제목 | 책상서랍 속의 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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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7-13 | 조회수2,437 | 추천수32 | 반대(0) 신고 |
연중 제 15주일-마태오 13장 1-9절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책상서랍 속의 편지>
최근 말없이 떠나간 몇몇 아이들로 인해 "짜식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배신을 때릴 수가 있나?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하며 속상해하며 한 몇 일을 보냈습니다. 몇몇 수사님들은 너무나 허탈한 나머지 식음마저 전폐할 지경입니다. 나간 녀석들의 행적이란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한 몇 일 재수 좋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나게 놀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무단 가출로 인한 폐해는 아이들에게나 저희에게나 참담하기에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마음 흐뭇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의기소침하고 있던 때, 한 아이가 몰래 서랍 안에 두고 간 편지 한 통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이 편지를 쓴 아이는 6개월 보호기간을 무사히 채운 아이, 그리고 보호자가 직접 와서 데려간 아이였습니다. 기억해보니 체구가 좋아 힘쓰는 일에 몇 번 데려갔던 아이, 또 돌아오는 길에 꽤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던 아이, 순대국밥집도 몇 번 같이 갔던 아이였기에 정이 들만큼 들었던 아이였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처음 신부님을 보고 <무슨 신부님이 저런 신부님이 다 있나> 하고 속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왠지 아세요? 신부님들은 기도나 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매일 같이 저희들과 축구하고 또 힘으로 안되니까 옐로우 카드 여러 개 받을 정도로 심하게 반칙도 하셨잖아요?
신부님, 그거 아세요.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적응이 제대로 안 되 굉장히 무뚝뚝하게 지냈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살레시오로 온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는 교회 근처도 가지 않았던 제가 살레시오에 와서 믿음도 가지게 되면서 부모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수도 없이 울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 동안 저를 아껴주시고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점 이 편지로나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사시길 빕니다."
쑥스러웠던지 면전에서는 이런 말을 못하고, 한 수사님 책상 서랍 안에 몇몇 수사님들과 신부님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남긴 아이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이의 편지 몇 통은 의기소침해 있던 우리 형제들에게 다시 한번 새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예수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자주 확인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힘겨운 일이겠지만 수사님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아이들, 수사님들의 인도에 자신을 맡기는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은 "정말 기적이 따로 없다"는 말을 연발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저 아이가 그 때 그 아이 맞나?"하고 의심할 정도로 변화됩니다.
아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든 생각입니다. "수확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당장 드러나는 눈앞의 결과에 연연해하지 맙시다. 최종적인 결과는 주님께 맡깁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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