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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끄러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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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08-02 조회수2,840 추천수38 반대(0) 신고

8월 3일 연중 제 17주간 토요일-마태오 14장 1-12절

 

"일찍이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거듭거듭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부끄러운 사제>

 

오늘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드릴까 합니다. 얼마 전 "승용차 중의 승용차" 티코를 몰고 시내 한 본당 미사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수도원 입구 중앙선을 좀 끊어주면 좋을텐데...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좀 불편해도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는 상습적으로 불법 좌회전을 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오가는 차도 없고 교통경찰관도 안보이기에 과감하게 핸들을 꺾어 불법 좌회전을 해서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30-40 미터 전방 사거리 사각지점에 몸을 숨기고 있던 오토바이를 탄 교통경찰관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짧은 호각소리와 함께 서라는 표시를 하는 것 같았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올라가자. 설마 여기 까지 따라 올라올까" 싶어 그냥 올라왔습니다. 아무래도 불안했던 저는 신속하게 주차를 마치고 마치 총알처럼 2층 식당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은 저는 제 침실로 들어가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드러누웠습니다.

 

그런데 염려했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하필 제 침실이 현관 쪽으로 창문이 나있었는데...오토바이 시동 멎는 소리가 들리더니 휴대용 마이크 소리가 제 귀를 울렸습니다.

 

"방금 올라오신 빨간색 티코 주인 빨리 나오세요!"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좀 버텨볼까" 하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들려오는 소리. "차량번호 6602 티코 주인 빨리 좋은 말할 때 나오세요."

 

어쩔 수 없이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참으로 얼굴을 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진해서 면허증을 드렸는데, 사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붙어있는 제 면허증을 확인한 교통경찰관은 "휴!"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하시는 말씀. "아, 거, 신부님들께서 좀 더 잘 해주셔야죠!" 참으로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절대권력 앞에서도,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고 진실만을 설파하던 세례자 요한의 당당한 모습이 유난히도 돋보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순교는 순교 신앙의 전형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하느님은 세상 그 어떤 권력이나 군사력보다 우위에 계신다는 것을 순교자들은 그들의 피로서 증거했습니다.

 

오늘날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피를 요구하는 절박한 상황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순교의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예로써 삶 가운데 끊임없이 순교의 영성을 살아야 합니다. 일상 안에서 순교를 해야 합니다.

 

일상 안에서의 순교란 다름 아닌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는 교통법규라 할지라도 일단은 법이니 만큼 성실하게 지켜나가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피를 흘려 하느님을 증거하지는 못할망정 기본을 못 갖춰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일, 교통경찰관이 없더라도 교통질서를 늘 지키는 일, 이웃이 당하는 불의에 합심해서 대항하는 일, 먼저 용서하고 화해를 구하는 일, 억울하지만 차라리 내가 손해보겠다는 마음...이런 노력들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순교입니다.

 

이 시대의 순교는 병인박해나 기해박해와 같은 대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하느님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이나 시련을 기쁘게 참아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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