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비오는 바닷가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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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8-11 | 조회수2,378 | 추천수36 | 반대(0) 신고 |
8월 12일 연중 제 19주간 월요일-마태오 17장 22-27절
"사람의 아들은 머지않아 사람들에게 잡혀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비오는 바닷가에 서서>
비오는 토요일 오후, 답답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우산을 받쳐들고 빗길을 산책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무조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전혀 협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오후여서 그런지 어느 길이든 다 차량정체가 심했습니다. 처음에 정한 목적지는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고 무조건 막히지 않는 길로만 가다보니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차는 어느새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가까운 야산을 오르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다른 곳,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해수욕장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도대체 계속 어디로 가요? 혹시 우리를 팔아 넘기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며 궁금해하던 아이들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백사장이며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보고 제정신들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비오는 바닷가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파도소리에 실려오는 아이들의 깔깔대는 목소리를 듣고있노라니 마음이 다 흐뭇해졌습니다.
"녀석들 처음에 봤을 때, 그야말로 자기들 표현에 따르면 <썰은(썩은) 얼굴>들이었는데, 저렇게 환한 웃음을 지을 줄도 아는 녀석들이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좀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바닷물을 향해 신나게 뛰어들던 모습들, 입술이 파래져서 와들와들 떨면서도 한결 환해진 아이들의 얼굴들, 뜨거운 컵라면을 보물처럼 손에 들고 기뻐하는 모습들은 불과 몇 달 전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진정 살아난 모습, "부활"한 얼굴들이었습니다.
아무리 험악한 아이들, 아무리 사고를 거듭 저지르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아이들 안에는 부활의 가능성이 잠재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멀지않아 사람들에게 잡혀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십자가 형에 돌아가신 주님의 얼굴은 참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얼굴이 아무리 찌그러져 있어도, 아무리 썩어있어도 절대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도우심과 우리들의 노력으로 오래가지 않아 반드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들로 변화될 것이니까요.
우리 그리스도 교리 안에서 이 부활 신앙은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며 이 부활신앙을 기초로 가톨릭 교회의 역사가 출발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 할 때,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승리만을 경축하는 데 전념한다면 뭔가 부족합니다.
부활신앙을 믿는다는 것은 부활이 있기까지의 과정 전체,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이 세상에 대한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은 매일 매일 이 세상에 죽는 사람입니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삶이 너무도 힘겨워 죽어있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결코 실망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죽음은 반드시 부활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은 잠시 지나갈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나약한 우리 육신의 안위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세상 모든 것 그 너머에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그분을 믿으며, 우리 또한 언젠가 죽고 부활해서 그분과 영원히 살리라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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