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강아지 취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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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8-17 | 조회수1,958 | 추천수21 | 반대(0) 신고 |
8월 18일 연중 제 20주일-마태오 15장 21-28절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강아지 취급>
오늘 복음은 구원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보편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나안 여인의 딸을 향한 사랑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부모님들 자녀들로 인해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자녀들의 내신성적 때문에, 그것이 아니라면 자녀들의 비행성향 때문에, 나약한 성격 때문에 등등. 그러나 딸로 인해 가나안 여인이 안고 있었던 걱정에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근심이 비교한다면 행복한 걱정입니다.
마귀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의 고통은 "억장이 무너지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마귀 들린 딸을 통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힘은 또 얼마나 센지요? 어떤 때는 엄마도 몰라봅니다. 입에 담지 못할 해괴한 말들을 수시로 내뱉습니다. 언제 어떤 사고를 저지를지 몰라 가나안 여인은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가나안 여인은 제정신이 아닌 딸을 붙들고 씨름을 해왔습니다. 차라리 딸 대신 자신이 마귀가 들렸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죽음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가나안 여인은 끝까지 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딸을 향한 극진한 사랑을 바탕으로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합니다. 이 병원, 저 한의원, 이 점집, 저 무당집 다 다닙니다. 딸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이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이런 딸을 향한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은 하늘까지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런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앞에 국적이나 인종, 종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부끄러움은 잊은 지 오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딸 때문에 "강아지 취급"까지 당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오직 딸의 치유만을 위해 겸손하게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간절하게 매달립니다. 딸을 위해 이 세상 그 어떤 굴욕도 비참함도 묵묵히 견뎌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과연 어떤 희생을 바치고 있습니까?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틈만 나면 그토록 "사랑한다", "너를 위해 마음 쓴다"고 고백하는 우리 형제, 가족, 이웃들의 영적인 치유와 회개와 새출발을 위해 과연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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