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재도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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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9-24 | 조회수1,399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9월 25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루가 8장 19-21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재도약>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또 한번 예수님으로 인해 기가 차지도 않은 일, 복장 터지는 일을 체험하십니다. 천신만고 끝에 예수님이 머무시는 거처를 찾아낸 성모님께서 예수님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십니다.
물론 성모님께서도 공생활 위해 출가(出家)하는 예수님을 떠나보내며 인간적으로 너무도 아쉬웠지만 "팔자려니" 생각하고 조용히 기도하며 지내자고 수 천 번도 더 다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실 수 있도록 성모님 자신은 한 알 썩는 밀 알이 되자고 수도 없이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출가이후 가끔씩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은 마리아를 안절부절하게 만들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유다 정권 핵심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소식들, 수많은 병자들에 둘러싸여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소식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성모님은 친척들을 앞세워 예수님이 거처하시는 숙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집앞에 도착은 했지만 한편으로 "내가 먼저 찾기 전에 절대로 먼저 찾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예수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성모님은 사람을 시켜 예수님께 어머니가 왔다고 전해달라고 당부하십니다.
말씀을 전하러 들어간 사람이 통 나오지 안길래 어찌된 일인가 알아본 순간 성모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쓰라렸습니다.
어머니를 바깥에 세워두고 한다는 말이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다 할 수 있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또 어떤 분이십니까? 언제나 그래왔듯이 예수님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때마다 상처 그 자체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즉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을 잉태하던 순간, 천사의 언약에로 돌아갑니다.
그 순간 성모님의 신앙은 다시 한번 큰 도약을 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자기 존재의 참된 의미를 깨닫습니다. 자신은 오로지 메시아를 세상에 도래하게 하기 위해 쓰여지는 하나의 작은 도구라는 사실을 절실히 상기합니다.
성모님은 인간적으로 정말 마음 아프고 아쉽지만, 한가지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 아들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의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냐?"는 말씀은 성모님의 가슴에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남겼습니다. 그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면 이제 "너는 너고 나는 난데 왜 상관이냐?"는 식의 막가는 말, 다시 말해서 이제 자신을 멋대로 하게 놔두라는 말인데, 성모님 입장에서는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셨던 성모님은 즉시 생각을 바꿉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처음에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 말씀을 간직하고 또 묵상을 거듭하던 중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 아들이기도 하지만 만민의 아들이라는 결론에 말입니다.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성모님의 신앙은 계속 성장합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건을 통해 성모님은 종전의 인간적, 기복적 신앙을 떨치고 보다 한 차원 높은 성숙한 신앙을 추구합니다. 이기적인 신앙에서 보다 이타적인 신앙에로 도약을 합니다.
성모님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예수님 역시 점차 메시아성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제 유다의 한 작은 고을인 나자렛에서 태어났던 예수님은 온 세상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성모님 역시 한 평범한 시골처녀의 신분을 벗어나, 하느님의 어머니로써의 삶을 점진적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신앙은 이 순간 결정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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