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 깨닫기(9/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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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2-09-28 | 조회수1,621 | 추천수19 | 반대(0) 신고 |
모두 예수께서 하신 온갖 일을 탄복하고 있을 때 당신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 사실 인자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이 말씀(의 뜻)이 그들에게는 가려져 있어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 말씀에 관해 그분에게 묻기조차 두려워했다.(루가 9,34ㄴ-45)
<말씀 깨닫기>
로마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아직 언어공부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학교에 등록하여 공부를 하는데 다른 과목은 대체로 이해를 하겠는데 <해석학>이라는 과목은 도대체 난해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교수님의 말씀은 너무 빠르고 사투리까지 섞여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어쨌든 한 학기를 끝내고 시험을 보는데(구술시험) 걱정이 앞섰지만 솔직하게 교수님께 <저는 사실 하나도 못 알아들었습니다>고 고백을 하였다. 그러자 교수님은 <그럼 질문을 하지?> 하셨다. <뭘 알아야 질문을 하지요?> <그려, 그럼 자네가 공부한 것만 이야기해 보게> 나는 내가 공부한 것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되었네. 그래 사는 것은 어떻고?> 그래서 시험보다도 사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시험을 끝내면서 교수님은 <자네를 격려하기 위해 만점을 주겠네> 하셨다. 그래서 가장 공부를 못하고 알아듣지 못한 과목을 최고의 점수를 받은 것이다.
오늘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접하고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제자들을 보면서 그때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말씀은 너무도 이해하기 어려운 공부였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지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질문이라도 하여 알아들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사실 뭘 좀 알아야 질문할 수 있지 아예 모르면 질문조차 할 수 없는 법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이 말씀에 관해 그분에게 묻기조차 두려워 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좀 알아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알면서 C 학점 D 학점을 받을 정도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아예 못알아듣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나에게 만점을 주신 그 교수님처럼 예수님도 측은지심에 A 학점을 주실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탄복>하고 있었다. 마치 잘 알아듣고 있는 듯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탄복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인자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게 될 것이다>고 하셨는데 아예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도 좀 진솔해질 필요가 있을 것같다. 예수님의 말씀에 탄복하고 그분의 행적에 탄복하고 뭔가 알 것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히려 우리는 진짜를 모르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그래서 겸손이 필요하다. 알아듣지 못했음을 겸손되이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말씀에 <탄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사는 것>이 진짜이다. 예의 그 교수님이 나에게 만점을 주신 이유는 당신이 가르치신 내용이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적으로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삶으로는 이미 그것을 겸허히 수용하고 살고 있다고 믿으셨기에 만점을 주셨으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그저 <탄복>만 하지말고 겸손되이 그 말씀을 살아가는 자가 되자. 그러면 언젠가는 알아듣기 힘든 그 말씀을 깨닫게 되리라.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후에야 그 말씀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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