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끄러운 고백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매일미사/2024년11월 22일금요일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
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10-10 | 조회수4,603 | 추천수49 | 반대(0) 신고 |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루가 11장 5-13절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르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
요즘은 계절을 타서 그런지 나이에 맞지 않게 자주 지난 시절을 회상하곤 합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내 생애 안에서 가장 절실히, 가장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언제였던가?"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수도생활을 시작한지 10년 정도 된 시기로 기억합니다. 제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많이 노력했었지만 노력만큼이나 방황이나 좌절이 많았던 시기,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하던 시기, 더구나 최종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종신서원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여러 측면에서의 다가오던 스트레스들, 거기다 지극히 소심했던 제 성격은 제 영육을 완전히 다운시켰습니다. "이렇게 소화가 안되고, 통증은 계속되고 혹시라도 큰 병은 아닐까? 아직은 좀 더 살아야 되는데..."하는 걱정에 내시경까지 해봤지만 아무런 이상은 없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다보니 몸이 맛이 가고, 몸이 맛이 가다보니 정신도 약간씩 맛이 간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공동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또 스트레스를 받고...아무튼 그런 악순환이 거듭되다보니 삶을 완전히 포기할 지경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소문을 통해서 제 근황을 알게된 어머니께서 하루는 큰 가방을 들고 수도원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애야, 수도생활도 좋지만 일단 살고 봐야 되지 않겠니? 그리고 이제 수도생활도 할만큼 했으니, 그만 됐다. 원장 신부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 이젠 시마이하고 집으로 가자!"
당시 너무도 심신이 지쳐있던 저는 "그 말씀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만큼이나 노력했는데, 시대가 나를 안 받쳐주니 할 수 없지"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귀향열차를 탔습니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집에 와서 투병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입니다. 처음에는 "그래,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몸이 안 따라주니 어쩔 수 없지"하고 완전히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릴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제게 어느 순간 "그래도 내 청춘을 바쳤는데, 너무 억울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가는데 까지 한번 가봐야 되지 않겠나?"하는 오기가 은근히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난 저는 집 가까운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정말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며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나쁜 짓 하려는 것도 아니고 수도자로서 봉헌된 삶, 봉사의 삶을 살려고 하는데, 이렇게 협조 안하시냐"고 인정사정 없이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 제 안에 남아 있는 에너지 전부를 기도에만 다 쏟아 부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도 기도가 지나쳤던지 탈진할 상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간절히, 참으로 절실히 기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기력이 다 소진되었다고 느껴지던 어느 순간, 하느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제게 건네셨습니다.
"애야, 이제야 알겠느냐? 네게 고통을 보낸 이유를. 정화가 단련이, 거듭남이 네게 필요했었단다. 이제 걱정말로 다시 한번 새출발해 보거라."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그때 당시의 고통을 가장 큰 선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보내시는 이유는 보다 절실한 기도, 보다 처절한 기도를 통한 새 삶을 준비하시기 위함입니다.
당시 제가 틈만 나면 밥먹듯이 되풀이하던 기도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하느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물론 여전히 하느님을 "왕실망"시켜드리지만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 닿는다는 확신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것, 한 차원 도약을 위한 것, 영적인 삶을 위한 것,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을 위한 것일 때 하느님께서는 100%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하루,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두드리시는 하루, 다시 한번 좌절을 딛고 힘차게 일어서시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