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려가는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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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11-06 | 조회수2,077 | 추천수29 | 반대(0) 신고 |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루가 14장 25-33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내려가는 날>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과연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들이 너무도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 가지 약점들이 제가 껴안고 걸어 가야할 십자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성격, 부족한 상황판단능력, 어리버리한 모습, 때로 "욱"하는 성깔, 비관적, 부정적 사고방식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 외에도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삶의 상처들,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악습들 등등 십자가는 어찌 그리도 많은지요? 또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숱한 배신들, 실행하지도 못했던 헛된 약속들. 인간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가슴을 치게 하는 수많은 과오들과 실수들, 책임감 없이 내뱉은 수많은 말들, 심사숙고하지 않고 써왔던 수많은 의미 없는 글들 등등.
어찌 생각하면 이 모든 제 삶의 약점들은 툭툭 손쉽게 떨쳐 버릴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별것도 아닌 것들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마도 한평생 이러다 죽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어 서글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되풀이할수록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약점을 지녔다는 것은 그리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며, 그 약점 때문에 삶을 포기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약점이 있다는 것은 인간다운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약점들로 인해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점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미워서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극진한 사랑, 보다 확실한 구원의 징표로 우리에게 약점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사도 바오로를 보십시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약점이나 한계, 결정적인 실수들을 감추려고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나는 한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박해자였습니다. 나는 도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나 가슴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몸은 늘 죄악으로 떨어지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등등. 바오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솔직히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놓고 자랑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매일 자신의 약함을 하느님과 이웃들 앞에 솔직하게 시인함을 통해서 오히려 강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그리고 이웃 앞에 자신의 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함을 통해 사도 바오로는 매일 성화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의 결핍이나 약점, 부족함 그 틈을 연기처럼 파고드십니다. 결국 하느님은 우리의 결핍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 그분 앞에 보다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되는 순간은 우리가 완벽하게 되는 순간이 아니라 솔직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보다 강력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그분 앞에 알몸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다 투명하게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뵙게 되는 날은 우리가 보다 밑으로 내려가는 날, 거추장스럽게 걸치고 있는 숱한 가식과 위선들을 보다 완벽하게 벗어버리는 그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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