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런 원장 신부님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사상이 맞지 않으면 | |||
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11-13 | 조회수2,109 | 추천수29 | 반대(0) 신고 |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루가 17장 20-25절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이런 원장 신부님>
미국의 한 수도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수도원은 50여명의 남자 수도자들이 노동과 기도, 약간의 외부 사도직 활동을 통해 생활을 꾸려가던 반관상 수도회였습니다.
이 수도원은 산을 끼고 돌아가는 강가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다들 "천국이 따로 없다"며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방문객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수도자들을 만나면서 더욱 감탄사를 터트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50여명의 수도자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밝고 명랑하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넓은 수도원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만나는 모든 수도자들은 다들 싱글벙글 만족하면서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출신이나 성장배경, 나이, 성격이 각기 다른 50여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모여 사는데도 불구하고 한번도 큰 목소리로 다툰다거나 서로를 헐뜯거나 시기나 질투를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수도원은 한 마디로 지상천국이었던 것입니다.
그 수도원이 그렇게 완벽한 평화 속에 지상천국을 구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인을 추적했을 때 한 사람에게로 시선이 모아졌습니다.
한없이 부드럽고 관대한 마음, 형제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각오가 되어 있던 목자중의 목자, 아버지 중의 아버지 원장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그 수도원에서는 굳이 회헌회칙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분의 미소, 그분의 표정, 그분의 의견이 곧 모든 수도자들의 규칙이었습니다. 그분이 미소를 지으면 만사 OK라는 표시였습니다. 그분이 조금이라도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면 수도자들은 알아서 자신들의 견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그분이 원하는 바는 곧 공동체 전체가 갈망하던 바였습니다.
독재 중에 독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원장 신부님은 그만큼 덕스러운 분이셨고, 기본이 된 분이었으며, 상식을 존중하던 분, 형제 회원들의 마음을 꿰뚫고 계시던 분, 형제를 위해서 하루 종일 헌신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수도자들은 원장 신부님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철저히 순명하였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원장 신부님은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 원장 신부님의 장례 기간 동안 모든 수도자들은 마치도 자신들의 친아버지를 잃은 듯이 크게 울부짖었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은 이제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확실하게 복음을 실천하는 단 한 명의 수도자만 있다면 공동체 전체가 살아날 것입니다. 앞에 소개해드린 원장 신부님의 공동체처럼 말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 나라는 멀리서 찾을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너무도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내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서 찾을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는 밥상을 차려다 놓듯이 그 누군가가 우리 앞에 가져다 줄 그 무엇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봉사와 헌신, 인내와 사랑으로 건설해야할 그 무엇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한번 겸손되이 밑으로 내려갈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한번 자비를 베풀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한번 기쁘게 봉사를 실천할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