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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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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11-22 조회수2,539 추천수32 반대(0) 신고

11월 22일 금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루가 19장 45-48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상인들을 쫓아내시며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하고 나무라셨다.

 

 

<주님, 살려주소서>

 

어제는 한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특별히 선발된 "품질 좋은"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부슬비가 오락가락했지만 놀이기구를 타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놀이동산에 와보지 않았던 나이 어린 꼬마는 시종일관 정말 리얼한 코메디를 연출해내 다들 두고두고 화젯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유난히 겁이 많은 그 아이를 겨우 겨우 설득해서 바이킹을 탔을 때의 일입니다. 배가 올라갈 때는 그런데도 참을만하지만 낙하하는 순간의 짜릿한 오금 저림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에게 그 짜릿함의 강도가 너무도 컸었던 모양입니다. 정점까지 높이 올라간 바이킹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고개를 깊이 처박은 아이는 함께 탔던 모든 사람이 다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또 다시 떨어질 때는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살려주소서." 떨어질 때마다 자신이 해봤던 모든 기도를 다 바치는 것입니다.

 

그 뒤로 친구들은 그 아이만 만나면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놀려댑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가 그 아이의 별명이 된 것입니다. 나름대로 절대절명의 순간에 울거나 괴성을 지르지 않고 아주 간절히 기도를 바친 그 아이에게 작은 상이라고 하나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성전으로부터 잡상인들을 몰아내십니다. 일종의 성전정화작업이지요.

 

기도와 관련된 교회의 여러 회칙에서 교황께서는 모든 공동체와 가정은 "기도의 학교"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각 본당, 각 수도원, 각 가정은 다른 무엇에 앞서서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입니다. 선배 사제나 수도자, 부모로부터 좋은 기도의 전통을 전수받는 곳이 우리의 공동체요 본당이요, 가정이어야 하겠습니다.

 

각 가정이나 모든 본당, 수도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의 양성소"입니다. 본당이나 수도공동체가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목표인 기도하는 분위기 조성에는 뒷전이고 너무 과도하게 지나친 상행위가 벌어지는 장소여서는 곤란하겠습니다.

 

현 교황님은 자신이 발표한 교서 "새천년기"에서 "여러분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새천년, 미래를 위해 과연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까?"라고 질문하십니다.

 

교황님의 질문에 개인적으로 응답하면서 이런 계획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계획, 주님을 만나기 위한 계획, 고통 당하는 주님의 얼굴을 관상하려는 계획말입니다. 그 계획은 다름 아닌 기도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합니까? 혹시라도 밤늦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사도직이나 이웃봉사에 투신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공허해지고, 허전해지고, "이제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또 우리가 행하는 사목적 봉사가 그토록  숱한 준비와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실패로 돌아가지는 않습니까? 그토록 우리 마음을 주고 사랑을 베풀었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배신감이요 무의미감뿐이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기도의 부족입니다. 기도와 활동의 부조화입니다. 잘못된 기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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