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기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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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11-24 | 조회수2,109 | 추천수29 | 반대(0) 신고 |
11월 25일 연중 제 34주간 월요일-루가 21장 1-4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자기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어린 시절 "친척은 자주 만나야된다"는 어머니의 압력에 못 이겨 제일 만만한 사촌 형님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습니다. 당시 사촌형님 내외는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랬듯이 겨우겨우 생계를 꾸려갔었지만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왠만해서는 서로 언성을 높이지 않는 화목한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둘이 큰 목소리로 언쟁을 벌였는데, 바로 외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툼한 외투 하나로 겨울을 거의 나다시피 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촌 형님의 "불쌍한 사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약점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당신 외투는 어쩌고 그냥 셔츠차림으로 들어와요?" 우물쭈물하던 사촌형님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아 외투? 공장에 두고 왔나봐." 즉시 상황을 파악한 형수는 매몰차게 몰아 부칩니다. "지난번에도 그래놓고 또 그러내. 자기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그게 얼마 짜리 인줄 알아요? 도대체 누굴 줬어요?" 계속 다그치는 바람에 겨우겨우 사실을 말합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글쎄 적선하는 사람이 이 추운 날 거의 내복차림으로 앉아서 떨고 있잖아? 그래서 빌려줬지."
벌써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사촌형님의 따뜻한 마음은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걸인들을 끝내 물리치지 못하고 집까지 데려와서 씻기고 밥 먹여서 보내던 기억들도 생생합니다.
단 한 벌뿐인 자신의 겨울 외투를 형수로부터 혼날 줄 알면서도 서슴없이 벗어 걸인의 어깨에 걸쳐준 사촌형님의 모습에서 가난한 과부의 체취를 느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극구 칭찬하십니다. 빳빳한 십 만원 짜리 수표를 헌금궤에 넣은 부자들에게는 한마디 칭찬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동전 단 두 개를 헌금궤에 넣은 과부를 극구 칭찬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과부의 헌금은 비록 그 액수는 적었지만 전적인 봉헌, 순수한 봉헌, 사심 없는 봉헌, 목숨까지 건 봉헌이었기에 극구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이리저리 다 빼돌리고 바치는 봉헌, 우려먹을 때까지 다 우려먹고 빈껍대기만 바치는 부자들의 봉헌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만무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의 여가 활동을 위한 시간은 철저히 지키면서도 하느님 앞에 잠시 머무르기는 왜 그렇게 힘든지요?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끝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만 하느님을 위한 투자에는 왜 그리도 인색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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