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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라리 꿈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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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1-09 조회수2,385 추천수32 반대(0) 신고

1월 10일 주님 공현 후 금요일-루가 5장 12-16절

 

"주님, 주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으십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 안에서 나환자들이 겪었던 고통은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일단 나병에 걸리면 특별한 치료약이 없었기에 즉시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말이 격리지 이 세상으로부터의 추방이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녹아 내리는 자신의 뼈마디를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던 환자들은 차라리 죽고만 심은 심정이었습니다. 개울물에 비쳐진 자신의 참담한 몰골에 매일 깜짝 놀라며 상심에 상심을 거듭해 갔습니다.

 

그런데 더욱 괴롭고 용납 못할 일이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나병을 천형(天刑)으로 여겼습니다. 뭔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대가로 나병을 얻게 되었다는 인식, 나병은 하느님으로부터의 오는 벌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천벌 받은 사람"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자니 억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가족들과 강제로 생이별한 환자들은 성문 밖, 사람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치유에 대한 일말의 희망도 없이 철저한 세상의 변방에서 나병환자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삶,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삶을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병환자들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나병환자들의 공통된 마음이었지요.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침이 밝아오고 눈이 떠지면 다시금 더욱 문드러져 가고 있는 자신의 삶을 확인해야만 하는 끔찍한 나날이 나병환자들의 일상이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꿈결조차 단 한번만이라도 예전의 보송보송했던 피부를 되찾아보는 일이 소원이었습니다.

 

이토록 삶 자체가 슬픔과 고통 덩어리였던 나환자들에게 주님께서 다가가십니다. 그 지긋지긋한 나병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주십니다.

 

나병 환자들에게 있어 치유는 단순히 치료적 행위를 넘어 삶을 되찾아주는 구원의 행위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다시 한번 생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치유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하느님의 자비이겠지요. 그런데 하느님 자비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 주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주실 수 있으십니다"고 고백할 수 있는 확고한 신뢰입니다. 주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 만물을 주재하시는 분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오랜 악습의 질곡에서 벗어날 사람, 죽음으로 향하는 불치병에서 회복될 사람, 자기 자신이라는 무덤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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