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는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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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1-10 | 조회수1,726 | 추천수27 | 반대(0) 신고 |
1월 11일 주님 공현 후 토요일-요한 3장 22-30절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는 것>
참으로 오랜만에 아이들과 농구시합을 했습니다. 교체멤버로 잠깐 들어가 뛰었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 올라와서 "야, 나도 이제 맛이 갈 때까지 갔구나"하는 느낌에 약간 서글퍼졌지요. 반면에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펄펄 날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리바운드 하나 하는구나"하고 흐뭇해하는 순간, 어느새 날아온 한 아이가 제 볼을 낚아채 갔습니다.
힘으로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열세였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무대를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주고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나는 일, 그것도 결코 속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는 것,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고 서로를 위해 너무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날 순간이 왔음을 알았을 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바람처럼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또 없는 듯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의 삶은 귀감 중의 귀감입니다. 요한은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신원,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한 세례자 요한은 무대를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자신은 즉시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무엇보다도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생애 전체를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온전히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물러날 순간에 이르렀음이 확연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는 인생은 얼마나 추한 일인지요? 너무도 불쌍한 인생이지요.
물론 사람인 이상 자신의 인생이 죽는 순간까지 지속적인 상승곡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후손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겨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여야지요.
세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란 제목의 연극에서 가장 돋보이는 조연이었습니다. 주연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짝 꽃피어날 수 있도록 자신이 맡은 바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이행했던 조연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우리의 인생에서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다짐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생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조금씩 성장하는 나날이 되길 다짐하는 하루이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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