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리바꿈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기적같이 환한 미소 | |||
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3-02-16 | 조회수1,22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6주일 복음(마르1,40-45)
오늘은 복음의 사건을 전후해서 나병환자의 입장과 예수님의 입장이 크게 바뀌었음에 주목하고 싶다. 즉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고 동네 밖에서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던 나병환자는 사건 이후 사람들에게로 돌아갔지만, 예수님은 반대로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실 수 없었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셔야" 했다는 사실 말이다.
나병 환자를 만나기 바로 직전에 그분은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찾아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며 마귀를 쫓아내시던"(1,39) 사실을 상기해볼 때 이 사건 직후 복음선포 계획도 커다란 차질이 생겼지만, 그분의 입장이 이제 나병환자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병환자의 가벼운 입놀림을 질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입을 다물라는 엄한 함구령을 거역할만큼 그는 죽음보다 깊은 절망에서 풀려난 자기 현실에 대해 기뻐 뛸 수밖에 없었을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예수님은 비록 오늘 복음에서만이 아니라 언제나 흔쾌히 우리와 입장을 바꿔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어찌 나병환자에 국한되겠는가. 그분은 우리의 소외와 절망, 수치, 슬픔을 모두 걷워내어 십자가에서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신 분이 아니신가. 그리하여 우리에게 희망과 존엄, 기쁨을 되찾아주신 분이 아니신가. 낮고 비천한 자를 들어높여주시려 당신 스스로는 종의 신분을 취하신 분이 아니신가.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우리를 위해 존재하셨던 분, 예수.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얼마나 자주 소외시키고 수치스럽게 만들며 슬프게 하였던가.
복음 선포 한답시고 우리가 우리 선전에 급급하고, 우리의 기쁨에 도취됬던 때마다 그분은 우리의 뒤로 멀찌기 물러나 계시지는 않았던가.
꼬딱지만한 자선과 희생을 베풀었다고 어깨를 으시댈 때마다 그분은 동구밖으로 밀려나 계시지는 않았던가.
한가지 시련을 이겨냈다고 우리의 승리를 광고할 때마다 그분은 슬며시 자리를 피해주시지는 않았던가.
우리는 한번도 그분의 사랑에 대해 함구하라고 엄명을 받은 바 없으면서도 왜 그다지도 그분에 대해 인색하게 함구하고 있는가?
미사 후에 깊은 탄식과 죄스러움으로 한참을 성체 앞에 머물렀다. ㅠ.ㅠ
주님, 주님의 자리를 제대로 찾아드릴 수 있는 착한 종이 되겠습니다. 주님의 자리를 빼앗지 않는 겸손한 제자가 되겠습니다. 이 마음 오래 오래 지켜갈 수 있도록 항상 깨워주십시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