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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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 작성일2003-02-18 | 조회수1,542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주님. ☜
『예수께서는 "그래도 아직 모르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8: 14-21.}
오늘은 아버지와 아드님께서 너무 많이 아파하시고 속상해 하십니다. 그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혹시 내가?" 하고 반문하며 바늘을 찾듯 저의 내면을 샅샅이 뒤져 보았습니다. 에덴에 뱀도 있었듯이 내마음 깊숙히에 계시는 하느님 옆에 칠흑같은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으면서 때때로 그 어두움이 하느님을 가리우고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는 5살 때 6.25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때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었나봅니다. 제 기억으로 6살 때인 것 같습니다. 시골집 창문에 석양이 유난스레 비치던 날 그 석양빛을 보며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 고모에게 "고모, 엄마 언제 와"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고모님의 대답이 "엄마는 죽었어, 그래서 엄마는 다시는 못 와"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은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 대답에 저는 엄마를 부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저는 그때부터 내면적으로 홀로였고 그 홀로인 나 속에 외로움과 그리움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그 허허로운 마음속에 솟아난 그리움이란 나무에 무수히 돋아난 곁가지들의 상처, 결코 나의 탓일 수 없는 이 상처들은 어른이 된 지금도 어떤 계기{契機}를 맞을 때마다 저를 뒤흔들어 "하느님 당신탓이예요" 하고 소리지르며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합니다.
저의 감성은 저 안의 이런 실체들을 볼 때마다 예수님께 그것을 보여드렸고 나름대로 그 어두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도 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미 해결 상태여서 "왜 그런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얼마전부터 "그래서인가?" 하고 생각해 보는게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외롭게 살다가 늦은 나이 30에 아들하나를 낳아 그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았습니다. 갖은 고생은 했지만 그 아들과 함께사는 동안 제 삶안에 외로움은 없었습니다. 그 아들이 십여년 전 집을 떠나 며느리 손자도 안겨주지 못하는 어느 담장안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다시 홀로남은 저의 내면에 다시 옛날의 그 외로웠던 삶이 물밀 듯 밀려왔습니다. 다시 외로워진 삶, 이 부분이 치유되지 않는 것은 "달라진 것 없는 옛날의 삶의 연속이어서 그런가" 하고 얼마전부터 생각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이런 저를 보시고 아버지께서는 한탄하시고 아드님께서는 꾸중을 하십니다. "왜 달라진게 없느냐, 옛날의 너는 나를 몰랐지만 지금의 너는 나를 만났고 그래서 20여년 동안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느냐?" 하시면서 제가 지금 어디에 초점을맞추고 있는가를 지적해 주시며 원인은 거기에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제 마음은 지금 사람을 그리워 하며 속으로 울고 있습니다. 아들이 집을 떠난 십여년동안, 아들과 함께 살면서 하느님께 불러드렸던 사모{思母}의 노래를 저는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십여년동안 원고는 고작 3편, 나머지는 눈물의 세월이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없다』{마태 10: 37.}
하느님 하느님 하지만 아직도 게파{바위}가 되지 못한 믿음, 아직도 붙들고 바라보고 있는 속성,오늘 아버지의 탄식과 아드님의 꾸중속에 그것을 내려 놓으라는 명령이 들어있음을 깨닿고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주님." 하고 말씀드리며 아침대용식인 콩물에, 꺼억꺼억 목이 맻인채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섞어 마십니다. 오늘이 지나고 시간이 흐른 다음, 얼마큼 가벼워진 그리움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을런지..........일생을 두고 계속해야 할 작업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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