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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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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2-22 조회수2,048 추천수30 반대(0) 신고

2월 23일 연중 제7주일-마르코 2장 1-12절

 

"그 때 어떤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계신 바로 위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를 요에 눕힌 채 예수 앞에 달아 내려보냈다."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그제는 송구스럽게도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민영 소년 교도소 연구발표회에 기조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소년재소자들 역시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아이들이라는 내용을 주제로 뭔가 한 마디 해야 됐었는데, "이거다"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중에 오래 전 제가 겪었던 한 작은 체험이 떠올랐지요.

 

제 왼 손등에 작은 상처가 생긴 적이 있었는데, 소독을 잘 하지 못해서인지 상처부위가 커지면서 안으로부터 곪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거짓말 하나 안보태서 왼 손이 오른 손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될 정도로 부어 올랐습니다.

 

상황이 그 정도 되다 보니 열이 오르고 머리도 지근거렸습니다.

 

마치 올챙이배처럼 부어오른 그 왼손을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부은 꼴이 너무 보기 싫다고 해서, 아니면 열이 나고 아프다 해서, 아니면 거추장스럽다고 해서 잘라버렸겠습니까?

 

정 반대였습니다. 너무 불편했던 저는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병원을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수술을 했습니다. 매일 수술부위를 정성껏 소독하고, 더 이상 곪지 않도록 항생제도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다른 신체부위보다 몇 배의 정성과 사랑을 상처가 난 왼손에 쏟아 부었지요.

 

이렇게 운을 띄운 저는 결론을 말했습니다.

 

"문제성 많은 우리 청소년들, 방황하고, 이미 맛이 좀 간 아이들, 소년원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우리 교정사목대상청소년들은 어찌 보면 한 순간 상처 입었던 제 왼 손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거추장스럽다고 잘라버릴 존재들, 이 사회로부터 영원히 추방시킬 제거대상이 아니라 더 깊은 관심과 더 열렬한 사랑과 인내로 감싸 안아 주어야할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요지의 치유 기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리를 차고 누운 지 아주 오래 된 중풍병자는 사실 인간적인 눈, 육적인 눈으로만 바라볼 때, 거추장스런 존재, 짐 같은 존재였습니다. 생산력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전혀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본 중풍병자는 정 반대의 존재였습니다. 가장 소중한 존재, 더욱 사랑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심지가 깜박거린다고 해서 꺼버리지 않으시는 자비의 하느님, 갈대가 상했다고 해서 꺾어버리지 않으시는 인내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논리에 따르자면 우리 가운데 살아가는 고질적인 만성질환자, 임종 중에 있는 환자, 심각한 성격장애자, 갖은 사고를 저지르는 비행청소년들은 격리시키고 추방시켜야할 제거 대상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에 두고 더욱 껴안아야할 존재, 더욱 집중적인 사랑을 받아야할 존재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공동체, 교회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모습, 예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공동체의 모습은 "약자"를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끝까지 "약자"와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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