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직자, 존재의 이유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시련에 대비시키시는 주님 | |||
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2-24 | 조회수2,689 | 추천수40 | 반대(0) 신고 |
2월 25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마르코 9장 30-37절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직자, 존재의 이유>
결코 짧지 않은 준비기간을 거친 형제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찾기 위한 인고의 세월을 보낸 형제들이 장엄하게 서원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한 젊은이가 넓고 쉬운 길을 다 뿌리치고 좁고도 가파른 길을 선택하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 드릴 뿐이지요.
또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길에 들어서는 형제들이나 그 가족들의 기쁨 역시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뜻깊은 행사이기에 지인들은 꽃다발을 보내오고, 축전을 보냅니다. 종신서원을 발하는 수녀님들은 멋있는 장미화관을 이마에 쓰기도 하지요. 서품식장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고, 여기저기 축하의 현수막이 펄럭입니다. 참으로 기쁜 순간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외적인 것들은 잠시 지나가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뜬구름과도 같은 것이지요.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종신서원을 발한다는 것, 서품을 받는다는 것은 승진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신분이 상승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무슨 벼슬이라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지요. "다시 한번 자신을 낮추고, 첫 마음에로 돌아가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는 다짐이 바로 서원의 순간이며, 서품의 순간입니다.
올 겨울에도 여기 저기서 있었던 종신서원식, 서품식에서는 여지없이 성인호칭기도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후보자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렸지요. 그런데 바닥에 엎드리는 행위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저는 온전히 하느님 당신의 소유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세상에서 티끌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오직 하느님만 당신께 제 삶을 맡겨드리며, 모든 이의 종이 되겠습니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습니다.
길에서 제자들이 보여준 행동은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전혀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우리 가운데 누가 제일 높은가?"에 대해서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에 너무도 마음이 아프셨던 예수님은 다시 한번 "그게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아버지의 왕국은 이 세상의 왕국과는 질적으로 다름을 역설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의 가치관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주지시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제나 수도자로, 교회 지도자로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이유, 굉장히 팍팍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올라간다는 것은 결국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소위 말하는 "고위성직자"들, 수도원 장상들, 주임신부님들은 "내가 누군데" 할게 아니라, 공동체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교회 구성원들을 실질적으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성직자나 수도자, 봉헌생활자, 교회지도자로 불림을 받았다면 그 이유는 오직 두가지 뿐입니다. "섬김과 봉사"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