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절과 입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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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3-04 | 조회수2,480 | 추천수30 | 반대(0) 신고 |
3월 5일 재의 수요일-마태오 6장 1-6절, 16-18절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사순절과 입맛>
제 수도생활 초기 때, 한 할아버지 수사님께서 사순절만 되면 되풀이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 전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둘을 넘는 것과 같지요. 백두산과 한라산. 둘 중 약간 낮은 한라산의 정상에 예수 성탄 대축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림 시기는 성탄이란 산정을 향해서 올라가는 시기입니다.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의 정상에는 교회 전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삼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바로 성삼일을 향해 등반하는 시기입니다."
음미할수록 전례시기에 대한 쉽고도 간결한 해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부터 우리는 성삼일과 파스카 축제를 최종 목표로 한 40일간의 등반 길에 오른 것입니다.
등산의 참된 의미는 김밥이나 도시락, 파전, 동동주 같은데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등산의 참된 묘미는 비 오듯 흘리는 땀에 온 몸이 흠뻑 젖는 과정, 숨이 턱에까지 닿아 포기하고픈 유혹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산을 정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그 기분은 산을 올라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특별한 느낌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째지는지요. 해냈다는 뿌듯함, 뭐든 다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옵니다.
물론 힘 하나 안들이고 산 정상에 발을 내딛을 수도 있지요. 헬리콥터나 케이블카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산꼭대기에 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산에 오르는 것은 등산이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시작하는 이 산행이 비록 힘겹고 고달픈 산행, 그래서 자주 포기하고픈 산행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산행, 주님을 위한 산행이기에 기꺼이 땀을 흘리는 산행이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출발하는 이 여행이 주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가슴 설레는 행복한 산행이면 좋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작년과 똑같은 체험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큰 일 났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벌써 성주간이네!", "왜 이렇게 사순절만 되면 입맛이 당기지?", "사순절에 다이어트 좀 해볼까 했었는데, 오히려 5kg 더 쪘잖아?"
부디 올해는 영문도 모르고 성당에 끌려갔다가, "무슨 계란을 이렇게 많이 삶지? 그냥 먹지 왜 그림은 그릴까? 어, 아까운 계란이 많이 깨졌네!" 하면서 계란만 실컷 먹다가 부활절을 맞이하는 불행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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