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범생이와 삐딱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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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3-14 | 조회수2,210 | 추천수36 | 반대(0) 신고 |
3월 15일 사순 제 1주간 토요일-마태오 5장 43-48절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범생이와 삐딱이>
한 아이를 밤늦은 시간에 경찰서에서 데리고 왔을 때의 일입니다. 이렇게나마 아이가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온 것이 너무 흐뭇했었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부탁이니 내 말 한번만 들어라. 이번만큼은 속는 셈치고 제발 좀 진득이 붙어있거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사흘을 못 넘긴 녀석이 너무도 얄미웠습니다.
"정신 바짝 들게 종아리를 좀 때려볼까?" 아니면 "새벽까지 말 고문을 좀 시켜볼까?" 생각했었지만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배가 고픈 것 같아 간단히 요기를 시켰습니다. 허겁지겁 정신 없이 먹어대는 아이를 보고있노라니 야단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씻기고 따뜻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이부자리를 챙겨주며 그랬습니다.
"잘 왔다. **야, 오늘밤은 아무런 생각도 말고 잘 자거라.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한번 새로 시작하는거야."
잔뜩 긴장했던 표정이 풀리면서 아이는 예전의 그 개구쟁이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이불을 끌어당기는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이가 내일 또 마음을 못 잡고 뛰쳐나간다 할지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좀 더 욕심을 부려 아이가 이제 마음을 잡고 "여기가 내 집이려니"하고 지냈으면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요보호청소년들, 다시 말해서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 속을 썩이는 아이들,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제행동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오랜 생각 끝에 밝혀낸 결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문제행동은 "제발 나한테도 관심 좀 가져줘!"라는 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이 삐딱하게 나가는 것은 "날 좀 더 사랑해주세요! 나한테도 눈길을 좀 주세요"라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범생이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착하고 예쁘고 고분고분한 청소년들, 내가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내가 제시하는 방침에 따라 너무도 잘 따라오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사랑, 이방인들도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랑에 머물러서는 안되겠지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착한 목자로서의 사랑을 요청합니다.
건강하고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양들 백 마리 보다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어린 양, 삐쩍 마르고 아직 덜 자라서 팔아봐야 몇 푼 받지도 못하는 그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사랑 말입니다.
우리 비행청소년들도 고분고분한 청소년, 제 갈 길을 잘 가는 범생이 청소년들 못지 않게 소중한 청소년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금 이 땅에 오셨다면 가장 먼저 찾아 나설 한 마리 길 잃은 어린양이 바로 우리 문제청소년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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