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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잊지 못할 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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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3-17 조회수2,202 추천수36 반대(0) 신고

3월 18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마태오 23장 1-12절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잊지 못할 파전>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네요. 제가 한때 남쪽 어느 도시에서 마땅히 갈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소규모 시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만고만한 아이들 7명이 봉사자 이모님 한 분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재미있게 지내고 있던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이모님이 교육을 가셔서 제가 대신 땜빵을 해주게 되었지요. 마침 아이들의 점심식사를 제가 직접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좀 해볼까?"하고 용감하게 앞치마는 둘렀지만 정작 앞치마를 두르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마침 날씨도 우중충했었는데, "이런 날은 감자전이나 파전이 최고지"하면서 전을 부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가까운 시장에 가서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 부추, 파, 감자를 잔뜩 사 짊어지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파전을 부치기 시작했었지요. 그런데 그게 의도대로 잘 안되더라구요.

 

막상 아이들을 상 앞으로 불러모으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성껏 만든 파전에 예의상 한번 젓가락을 갖다댄 아이들이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협박을 해도 전혀 협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파전을 위해 만든 반죽 한 들통을 옆집 아주머니에게 다 갖다드리고는 최후의 수단으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아이들은 중학교 3학년부터 한 두 살 터울로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짜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초딩 2학년 짜리가 내내 얼굴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딩 2학년 짜리를 제 무릎에 앉히고 물었습니다. "애야,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냐? 아니나다를까 아이는 나름대로 한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초딩 1학년 짜리와의 문제였습니다.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1학년 짜리가 감히 대선배인 나한테 자꾸 개기고 꼽살려서 죽겠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래? 그래서 네 표정이 밝지 않았구나. 그래 초딩 1학년 짜리 때문에 고생이 많았구나"하면서도 속으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데 벌써 나이나 학년을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에 물들어있다는 것에 대해서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성숙한 인간들의 공동체일수록 약육강식의 지배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구나"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소년원이나 구치소같은 데를 가보면 약육강식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실감하게됩니다. 힘세고 경력이 화려하면 그 안에서는 짱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약육강식의 지배논리가 유효한 것 같아서 서글플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려고만 합니다. 끊임없는 상승에로의 욕구는 마치도 본능과도 같은 욕구인 듯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남들이 다 추구하는 그 길과는 전혀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남들은 기를 쓰고 높이높이 올라가려고만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정 반대로 끊임없이 밑으로 내려가려고 애를 씁니다.

 

세상사람들은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발버둥을 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서든 이탈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지배하고자 안달이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면 하느님 품 안에 이웃들의 요청에 예속되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겸손과 온유로 단단히 무장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웃을 섬기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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