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추는자의 복 ☜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그가 나병쯤은 쉽게 고쳐주실 텐데요.’』{ 2열왕 5: 1-15.}
군 사령관의 지위가 어떤 것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군사령관과 하녀,
지위를 놓고 볼 때 바로 태산 앞에 흙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그 하녀의『말』을 그냥 흘려 버리지 않고 왕 에게 전하고
왕은 그 하녀의 『말』을 받아들여 나아만을 이스라엘로 보냅니다.
예언자를 찾아간 나아만은
예언자에게 푸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으로 화가 나서 돌아서는 발길을
부하들이 가로막고 서서 만류합니다. 부하가 장군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은
곧 목숨과 직결합니다. 장군에 대한 충성에 목숨까지 내놓은 부하들이었습니다
나아만 은 다시 부하들의『말』을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치유와 함께 다른 세상에 존재해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예언자입니다.
하다못해 무당을 통해서도{2사무 28: 9-20.}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유대민족과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언자의 모습으로 오신,
정작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박대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받게 될 축복을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마태 10: 41.}사람들이 받게 됩니다.
나아만은 요르단강 물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었습니다.
그 옷은 군 사령관이란 옷입니다.
그 옷은 나아만의 권위, 명예, 부, 지위가 들어 있는 옷 입니다.
옷을 벗었다는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을 땅에 내려놓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옷을 벗고 요르단강 물에 들어갔을 때 그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습니다.'{열왕 하 5:15,}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우리가 지금껏 입었던 옷을 입고는{상식 가치관 등등..}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마태 22: 12.}
지금껏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 버리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예복{성서}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나아만은 하녀가 하는 말을 듣고 그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누구의『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그사람의 위치에 함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녀의『말』을 받아들인 나아만, 그는 자신을 그렇게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