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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사순5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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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12 조회수1,346 추천수1 반대(0) 신고

◎ 2003년4월12일(토) -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1,45-56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리라.>

 

[복음의 향기]

요한복음에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는 행동을 처음으로 보인 것은 예수께서 전(前) 실존적(實存的) 자기계시를 밝히시는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이다.(8,58-59) 예수님에 대한 비난과 논쟁에 이력이 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손을 돌을 들게 되는 이 대목은 목전에 와 있는 예수님의 죽음을 위한 전주곡이다. 여기서부터(9장) 과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까지(12장) 예수님 공생활의 절정을 이루는 3가지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예수께서 몸을 피하여 성전을 떠나가시는 길에 태생소경을 치유한 사건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소경과 유다인, 예수와 유다인 사이의 논쟁이다.(9장) 둘째는 목자와 양의 비유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이 자신을 아버지와 하나임을 계시하시고, 이 때문에 유다인들이 두 번째로 예수님을 돌로 치려한 사건이다.(10장) 셋째는 예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통하여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으로 계시하신 사건이며, 이를 계기로 유다인들의 지도부는 예수를 죽일 계획을 담은 청사진을 완성한다.(11장)

이 세 가지 사건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비교적 효과적인 공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본격적인 구원사건인 수난과 죽음의 역사로 이동하실 것이다. 우리는 앞서 간 복음묵상에서 요한복음 제1부(1장-12장)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 도식에 의한 예수님의 신적(神的) 자기계시(自己啓示)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요한복음 2부(13장-21장)에서도 "에고 에이미" 도식은 시종 관철되고 있지만,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6.20)에서 시작하여 "나는 빵, 빛, 문, 착한 목자, 부활, 생명, 길, 진리, 참 포도나무, 아버지와 하나, 어머니의 아들이다"는 언명을 통하여 우리는 과연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도식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단순히 "누구", 또는 "무엇"이라는 식의 정체나 신원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무엇 자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에고 에이미"의 진수는 고별사에서 12제자에게 말씀하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는 언명에 있다. 이 언명은 공생활을 마감하는 세 가지 사건(9장의 태생소경치유, 10장의 목자와 양의 비유 가르침, 11장의 죽은 라자로의 소생기적)의 진정한 의미를 재교육 차원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태생소경의 치유를 통하여 소경에게 참 빛을 선물함으로써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있게 하셨다."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9,39)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비유 가르침을 통하여 자신을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계시하셨다. 문은 곧 "길"이다. 예수님은 생명에 이르는 문이며,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다. 우리 인간은 "길"을 묻는 자에게 단지 "길"을 보여주거나 안내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자신이 "길"이니 자신을 밟고 걸어가라고 하시는 것이다.(10장) 예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죽음으로부터 소생시킴으로써 자신이 "생명"임을 계시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11,25)

라자로의 소생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께 믿음을 가졌고, 백성의 지도부는 예수로부터 완전히 돌아섰다. 백성의 지도부는 예수를 죽일 계획을 굳혔다. 그러나 그들 마음대로는 되지 않는다. 아직 시간이 오지 않았다. "생명" 자체이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예수께서 어쩔 수 없이, 또는 마지못해서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자유롭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세상에 "새 생명"을 선물하시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52)◆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으면, 그것은 선물입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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