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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다의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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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13 조회수1,572 추천수2 반대(0) 신고

 

                        ☞   유다의 배반  ☜

 

유다의 배반에 관한 기사{記事}는 3복음에 다 나온다. 이 기사를 어떤 학자는『수난사

{受難史}중 가장 불명료한 수수께끼』라고 말하고 있다.{로마이야} 이 기사가 너무 간

단 하기에 어떤 동기로 유다가 자기 스승을 반대자들에게 넘겼는가를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수난사{受難史}의 발단{發端} 그의 근저{根底}가 되기에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신중하게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유다의 사람『됨됨』에 대해서 사람

들은 보통 그자를 사탄의 권화{權化} 바탕이 처음부터 악인{惡人}이었다고 말하고 있

다. 성서도 그를 악마{惡魔}{요한 6: 70.}라고 말하고 있고『멸망의 자{子}』

{요한 17: 12.}라고 이르고 있다. 시인{詩人} 단테도 그를 지옥의 맨 밑바닥에 던져진

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바탕이 처음부터 악인이라고 봄은 잘못이다. 반역

배반을 기할 때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고 성서가 말하기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가기

전까지는 보통의 일반 사람이었다는 것, 틀림없다.

 

인간은 누구나 사탄 속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사탄이 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사탄

에 씌워져 예수님을 힐책했던 것이다{마르 8: 32-33.}. 좀 이상한 이야기지만 악마에게

홀릴 정도의 사람은 비교적 휼륭한 사람이다. 맛없는 과일은 벌레도 먹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유다나 베드로나 다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진리일지도 모른다. 유다가

회계{會計}를 맡은 것{요한 12: 6.}으로 보아서 그가 비교적 신용이 있었고 사무적 재

능이 있었다는 것,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가『도둑』이라고 말하고 있기에 그가

탐욕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를『도둑』이라고 한 것은 유다에 대한 증오 때문에 후

에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어떻든 유다는 공상가{空相家}가 아니고

실제가{實際家}였다고 본다.

 

따라서 유다가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되었을 때부터 예수님을 반대자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 확실하다. 반대로 그는 무엇인가 열심히 해 보려고 했고 열심한 제자

가 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해서 처음부터 어떤 예감을 가지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만일 제자가 당신을 배반하게 된다면 혹시 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어떤 학자는 말하고 있다. 사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예

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임할 때 기도했는데{루까 6: 12.} 유다가 그 기도의 대상이 되었

는지도 모른다. 요한의『너희 12를 뽑은 것은 내가 아니냐? 그러나 그중의 한사람은...』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중에서 우리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배반의 위험을 알고 있으

면서 예스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런 자를 뽑았는가 하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보통의 전도자의 고민조차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그를 선도해 보려고 애를 썻으나{요한 13:

1. 참고} 결국『멸망의 子』는 그대로 멸망하고 만 것이다.

 

유다의 배반의 동기는 예수님에 대한 실망으로 본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예수

님과 합치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유다가 예수님을 자기 이상{理想}적인 『메시아』

로 보고 열심히 그를 따랐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해서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이 아

니라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다. 특히 5천 명의빵의 기적에서 유다는 그 절정

에 달했다는 것이다.{요한 6: 14-15, 60, 66 이하} 여기서 유다는 예수님을 완전히 떠날

작정을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물론 유다의 마음 『변질』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놓고, 다른 제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당

신의 죽음이 제자의 배반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결과라는 것을 힘있게 일러주고 있

다.{요한 10:17-18.참고} 유다의 배반은 하느님의아들, 예수님의 생애에 오점을 남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님의『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유다 없이 하

느님의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가 없다.

 

PS: 김정원 신부님의 강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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