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십자가의 진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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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 작성일2003-04-14 | 조회수1,42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십자가의 진리 ☜
사도 바오로는 가끔『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고전 2: 2, 갈라 3:1.}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개소{箇所}들에서 일러진 대로 그리스도는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과거의 어떤『때』{時}에『십자가에 달렸다』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에스타우로메노스』라는 말마디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시제{時制}가 완료{完了} 수동형{受動形} 분사{分詞} 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 과거{過去} 일회{一回}적인 것이 아니고 자금도 십자가에 달리고 있는 영{靈}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쓰여지고 있는 동사{動詞}의 현재완료{現在完了}의 분사형{分詞形}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현재분사{現在分詞}가 아니고 현재완료{現在完了} 의 분사{分詞}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현재{現在}의 영{靈}의 그리스도가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을 일러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완료{現在完了}는 희랍어{語}에 있어서는 어떤 사건이 결정적으로 일어나 그 효과 {效果}가 현재{現在}에까지 그대로 지속하는 것을 일러주는 동사{動詞의 형{形}인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십자가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언급할 때 이 동사형을 사용하는 것에 우리는 바오로의 신앙의 참{眞} 모습을 보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 는 지금도 십자가에 메달려지는 영적{靈的}그리스도인 것이다. 바오로의 영안{靈眼}은 살 아 있는 현재의 구세주를 확실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세주는 바오로에게 있어 서 그의 영성의 구세주만이 아니고 그의 전존재{全存在}가 神의 신성한 율법에 저촉된 수 없는 죄의 인격적 책임을 십자가에서 구속했던 구세주인 것이다. 神의 아들{子}의 수육 {受肉}은 역사적 일회적인 십자가 상{上}의 형사{形死}에 그 초점을 두지만 십자가와 그것 과 불가분리{不可分離}의 주{主}의 부활이 바오로의 복음의 양극이었던 것이다. 역사와 초 역사{超歷史} 현실계{現實界}와 영계{靈界}의 양극적인 대립긴장{對立緊張}의 관계에 복음 적 신앙이 성립하는 것으로, 영{靈}의 그리스도인 동시에 이미『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리 스도』{요한1서 4: 2.}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신앙이 신비주의적인 것이라기보다 예언자형 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 분명히 사도 바오로의 신앙은 이와 같이 神과의 일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義의 神과 사랑의 神 간의 심한 대립긴장에서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형성{歷史形成} 이 이룩되었고 윤리가 나왔으며 신학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그리 스도는 그의 전존재의 구세주이며 동시에 역사를 관철하고 우주{宇宙}를 그 완성까지 끌 어올린 독일{獨一}의 神이었다.『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메달려지고 있는 그리스도』인 동시에『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에 神의『거룩 함』과『의로움』이 있게 된다.『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 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고전 1: 30.} 이러한 성{聖}과 義를 영{靈}과 함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기에 우리의 전존재의 구원이 있게 되고 인류 역사의 구속이 이룩되는 것이다.
PS: 김정원 신부님 강론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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