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썬글라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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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선필 | 작성일2003-04-26 | 조회수1,483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오늘 복음(마르코 16장 9-15절)을 읽어보면,
제자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습니다. 그토록 믿고 따랐던 주님이시라는 분이 어이없게 힘한번 못쓰시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퍼하고 울고 있는 것에만 열중하던 제자들은 새 소식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그토록 믿고 따랐던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는데, 무슨 다른 일이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 때문에 슬픈 중이니까, 누구도 내가 슬픈 것을 방해할 순 없어.’
마치 속으로 굳게 다짐이라도 하듯이, 제자들은 슬프다는 그 감정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심지어 그들의 슬픔을 말끔히 씻어버리고도 남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엄청나고도 기쁜 소식을 듣고서도 그들에겐 오로지 슬퍼하는 것이 전부인 것인양 흘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 당시 그들을 두고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직접 그들앞에 나타나셔서 꾸짖으시자, 그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현실로 말입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는 복음선포의 사명을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십니다.
당시 제자들의 모습을 제 안에서도 발견합니다. 싫어하는 형제를 보면,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나쁘게만 보입니다. 그가 좋은 일을 해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싫으니까요! 저는 그를 싫어하는 중이니깐 그는 반드시 나쁜 일만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 그의 좋은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심으로 도움을 필요로 할때, 그가 저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깨닫습니다.
’아차! 그도 좋은 사람이었구나! 왜 예전에는 알지 못했지?’
살다보면 비단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제가 선택해놓은 색깔의 색안경만을 끼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총천연색의 자연스러운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 세상이 왜 다 노랗지? 정말 맘에 안드는군... (시간이 지나서 그는 생각합니다.) 세상은 다 노랗구나!’
그런데 어떤이가 말합니다.
"세상은 노란색만 있는게 아냐~ 다른 색도 많단다!"
그러나 그는 성내며 대꾸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세상은 전부 노랗다구!"
결국 그는 누군가 색안경을 벗겨줄때까지 세상은 노랗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기쁜 소식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을 때, 이미 예수님은 부활해 계셨고, 제가 형제를 미워할 때도, 그는 이미 나름대로 선량한 형제였던 것입니다. 또한 제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볼 때도, 세상은 이미 아름답고 자연스런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주어진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괴로워서 미칠정도가 될 때, 예수님은 꾸짖으시며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답은 우리가 괴로워하기 전부터 이미 존제하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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