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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모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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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28 조회수1,239 추천수1 반대(0) 신고

 

                           ☞   모 순{矛盾}  ☜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습니

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

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로마 8: 23-25}. 사도 바오로의 이 말은 참으로 인간의

페부에서 나온 가장 심각한 말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바로 모순의 실감에 민감한 한 영

혼의 사념{想念}이 메아리쳐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아무래

도『나아지지 않는 마음{心}과 』모든 것을 놓고『감사드릴 수밖에 없는 마음{心}』이

동시에 우리 몸{體}에 공존{共存}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성령을 받아서 우리는 神의 아들이 되었다. 옛{古} 육{肉}의 몸은 이미 죽고 神의 영

{靈}에 사는 者가 이제 된 것이다.참으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기쁨』과 감사가 여

기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기쁨』과 감사에 충만되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입장

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한편으로 이 몸{身}과 이 세상의 全적인 구속{救贖}을 위한 성

령의 통절한『신음』을 우리는 영혼의 오저{奧底}에서 듣는다. 사도 바오로는 성령에 충

만된 채『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라고 하면서『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

신의 사람으로 확인해 주셨고 그것을 보증하는 표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

다.』{고후 1: 22}라고 거듭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영적체험의 깊음과

그『건전함』을 대하게 된다.

 

이  세상의 소위 신비주의와 신약성서의 신비주의 와의 근본적인 상위{相違}는 바로 여

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최근 어떤사람이 도파{道破}했던 것처럼 신약에

있어서는『영적인 것이 종말적인 것이고 종말적인 것이 동시에 영적인 것이다』고 한 거

기에 있을 것이다. 성령에 충만되어 마음이 기쁘기 한량이 없지만 그러나 이것은 인간측

에서 자족되지 않고 인간의 영적체험 자체가 항상 무너지고 말지만 종말에의 신앙과 희

망에 의해서만이 그것이 다시지지{支持}되고 생성되어 간다는 것,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앞에 열거한 로마서의 개소{箇所}는 바오로의 이러한 체험과 신앙의 고전적인 증언인 것

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지고 시대가 경과됨과 더불어 종말에의 희망과 현재의 영

적체험 간에 생긴 긴장 은 이제 없어지고 초대교회의 시앙은 소위『실현된 종말론』자기

안에 성취된 그리스도에 의한 구제{求濟}에 일면적으로 경사되었다고 많은 신약 학자들

이 생각하고 있다. 이 견해가 학문적으로 과연 정당하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는 잠시

차치한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신앙의 현실은 어디까지나 위에 말한 바오로적인 모순 속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이 모순의 해소에 사도 바오로 이후의 신앙의 무력화 외 일탈

의 근본소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 모순 속에 살고 영혼의 고통에 참여하

면서 오히려 감사하고 종말에의 희망을 굳게 간직하며 신앙의『경기장』을 달릴 것이다

 

PS:김정원 신부님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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