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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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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30 조회수1,340 추천수2 반대(0) 신고

 

                     ☞   신앙과 사랑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

람안에 계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재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짖말쟁

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

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1요한 4: 16-21}.

신앙은『순수함』을 자장으로 삼는다. 그것은 오직『한 분』만을 주님으로 섬긴다. 신앙

은 오로지『하나』만을 원하고 있다.『마음의 깨끗함은 "하나"를 바라는 법이다』고 한 키

에르케골의 말은 신앙의 특질을 보다 잘 표현하고 있다. 신앙은 구원의 조건으로서『신앙

만의 신앙』을 주장하고 있다. 신앙은 사랑에 의해서 작용된다.{갈라 5: 6}. 사랑은 실행

을 원칙으로 한다. 사랑은 모든 사람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모든 사람과 『하나』

가 되기를 원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하나』를 바라는 사랑은『실행』을 원칙으

로 하고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으로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한 분의 주님을 섬긴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만을 우리는

앙모한다. 그리스도는 구속{救贖}된 우리 가운데 사시며 우리 가운데 내주{內住}해 계시고

우리를 통해서 활동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는 동시에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이신 것이

다.『위』{上}에 계시는 우리의 그리스도는 우리『가운데』{中} 계시는 그리스도, 초월의

주는 또한 내재의 주인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신앙은 사랑에 의해서 작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언자의 하느님은『위』{上}의 하느님이었고 초월의 주님이었다. 고

로 예언자는 신앙만을 강조했고 따라서 참다운 신앙에 이르는 신앙을 구체화시킬 수는 없

었던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을 때{요한복음 1: 14}, 사랑은 우

리 가운데 비로소 살아 있는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신앙만의 신앙』을 이 세상의 현실 가운데서 누가 무비판적으로 주장할 때,

이것은 하나의『추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전{空轉}만 거듭하는 신앙의

『케리커처』만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랑이 없는 바리사이파적인 신앙만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쭐대는 영웅적인 독선의 말로{末路}만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신앙은 이

세상의 현실 가운데 사랑으로서 간접적으로 구체화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일{事}

이  세상의 속사{俗事}는『신앙만의 신앙』의 입장만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신앙의

『장애물』이 되고 따라서 신앙者는 이세상의 일{事}을 제쳐놓고 직접 신앙의 일{事}에 제

휴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이 사랑으로 작용되어질 때 신앙은 일견 아무것도 아닌

이 세상의 일{事}도 하느님의 영광으로 드러내고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장소가 바로 하

느님의『손길』이  닿는다는『곳』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한의 사랑으로 이 세상의 노고가 승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크리스챤의 생활

원리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속사{俗事}에 휘말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의 장소를 나

름대로 전도의 장소로 바꿀 때, 간접적인 사랑의 장소는 직접적인 신앙의 장소로 바꿔지는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교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과 함께 사랑을 가지고 활동

한다.

 

PS:김정원 신부님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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