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神의 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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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 작성일2003-04-30 | 조회수1,37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 神의 뜻 ☜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꼐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아버지꼐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마태 11: 26-27}.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神의『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챤이 자기를 비우고 神의『마음』{心}만을 찾는 가운데 오로지 성지{聖旨}를 따르고 받드는 것이 신도생활에 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실제 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에 우리가 봉착할 때, 우리는 기로{岐路}에 선 채, 단안{斷案}을 못 내리고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 {例}를 들면 직업문제, 결혼문제, 기타 여러 가지 문제의 결정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이 런 문제를 놓고, 신앙의 차원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놓고 우리는 우 리의 결단으로써가 아니라 神의『뜻』을 따름으로써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神의『뜻』 이라고 한다면 직업이 아무리 시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혼이 아무리 돈 없이 치뤄진 다 하더라도, 神의 축복이 내릴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반면에 인간의 눈에 제아무리 최선의 것으로 보여지는 직업, 또는 결혼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神의 성지{聖旨}가 아니라 고 한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은 분명『화』{禍}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직업 또는 결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인간이 보다 깊게 神을 사랑하고, 보다 밀접히 神을 따르고 그리고 전심으로 神을 받드는 것이 生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는 소위 이상{理想}의 직업 또는 이상{理想}의 결혼이 문제가 아니고, 가야 할『길』{道}을 神의 뜻대로 전력을 다해서 가는 것, 그것인 것이다. 신앙생활의 성장은 보다 순수하고 확실하게 神의『뜻』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 는『귀』를 지니는 데 달려있는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신앙의 선조들은 전부 이런『귀』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꼭 완전한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영{靈}의 맑은『눈』과『귀』를 가진 사람들이었 기에, 언제나 神의『뜻』을 깨달아 알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神이 참으로 살아 있는 神으로 부각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특히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격었던 예언자들, 사도들, 아니 예수 자신의 구체적인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이 격었던 고난과 사명이 컸기 때문에, 이들이 위대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이런 고 난을 神의『뜻』으로 알고 받아들였기에, 이것을 통해서 神의 영광이 현양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영광을 자기들에게 돌리지 않고 神께 돌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위대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神의 성지{聖旨}는 생의 전부였다. 이들이 혹독한 고난을 받으면서도 소위 영웅주의{英雄株義}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神의『뜻』을 확실히 알고 그대로 추종했기 때문 이다. 우리도 神의 성지{聖旨}를 알아듣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것이 神의 성지{聖旨}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박해도,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할 것 이며, 심지어 죽음ㄷ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서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태 26: 42}. 인간이 자기의 의사나 선택을 따르지 않고 神의 성지{聖旨]에 따른다는 것, 그것은 결국 기르스도의 고통에 참여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통에 만분의 일에라도 참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감사와 찬미는 고난 가운데 충일되어지는 법이다.
PS: 김정원 신부님 강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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