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버지 눈동자 속의 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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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5-03 | 조회수2,522 | 추천수33 | 반대(0) 신고 |
5월 4일 부활 제3주일-루가 24장 35-48절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버지 눈동자 속의 바다>
자식들로부터의 효도는커녕 갖는 박대를 당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는 연로하신 분들을 가끔씩 접할 때마다 가슴이 저며옵니다. 저 역시 "부모님" 생각만 하면 속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기만 하기에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중풍에 걸려 10년 이상 고생하신 아버지 병수발을 위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사에 사직서를 낸 효자,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바닷가로 훌훌 떠난 한 효자의 이야기를 읽고 오늘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10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 전신마비증세로 죽을 고생을 다해오셨습니다. 심각한 언어기능 장애로 하루 온종일 말 한 마디 못하고 그저 멀뚱히 허공만 바라보는 것이 아버지의 하루 소일거리입니다. 물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아버지였기에 아들은 하루 온종일 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새벽 4시, 눈을 뜨자마자 아들은 습관처럼 옆자리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아버지의 코앞으로 바짝 귀를 가져다 댑니다. 가녀린 아버지의 숨소리를 확인한 후에야 안심한 아들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갑니다.
바닷일을 마치면 오전 8시 30분,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손수 아침밥을 짓습니다. 12시 30분, 저녁 6시 30분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드립니다.
부자(父子)가 거처하는 집 담장은 다른 집과 달리 독특합니다. 10미터 길이의 담은 양끝만 높다란 돌담일 뿐, 가운데 7미터는 유치원생들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을 정도(무릎높이 정도)로 낮습니다.
돌담이 낮은 이유는 아들이 허물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늦가을, 방에만 누워있기 답답했던 아버지가 하루는 마루에 나와 겨우 앉아 계셨습니다. 아버지 곁에 나란히 앉아본 아들이 아버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어딘가 살펴보았더랍니다.
그런데 아들은 한가지 가슴아픈 일을 확인합니다. 혼자서 일어서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높이에서는 돌담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마루로 기어 나오신 아버지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꺼운 돌담이 바다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들은 돌담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높이 1m 30cm 두께 60cm의 돌담을 묵묵히 부숴 나갔습니다. 3주만에 높다란 돌담이 있던 자리엔 앞이 훤히 트인 낮은 벽돌담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마루로 나와 계십니다. 돌담을 허문 뒤에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루로 기어 나오십니다. 아들은 그 아버지 곁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봅니다. 쪽빛 바다. 아버지를 돌아봅니다. 당신의 눈동자에도 바다가 들어와 있습니다(중앙일보 11922호 참조).
아버지에게 바다를 보여드리기 위해 담장을 허무는 아들의 모습 참으로 기특해 보였습니다.
불편하신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드리기 위해 애쓰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에게 해야할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 앞에 발현하실 때마다 건네셨던 첫마디 말씀은 평화를 빌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잠시나마 예수님과 결별한 제자들의 상황은 참으로 절망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존재의 의미나 가치관, 위계질서나 규칙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심리적 상황은 그야말로 "갈팡질팡" "우왕좌왕" "안절부절"이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제자 공동체를 눈여겨보셨던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최우선적 사목의 방향을 설정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평화와 위로, 부드러운 접근을 통해 안심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신 인사 말씀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란 인사말씀이었습니다.
병고와 불행으로 인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선물로 안겨주는 노력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자로서 실천해야할 으뜸가는 의무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불안에 떠는 이웃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느님께 맡기세요" "마음 편히 가지세요" "제가 기도할께요"와도 같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보다 자주 건네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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