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全} 생활적 신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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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 작성일2003-05-05 | 조회수1,20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전{全} 생횔적 신앙 ☜
『빵의 기적』은 우리 신앙생활과 관련해서 생각할 때, 우리에게 깊은『진리』를 일러준다. 생전{生前}의 예수가 가끔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이것이 최후반찬을 정점으로 해서 초대교회의 主의 만찬의 예전이 되었다는 것,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최후만찬은 새 계약의『표지』라는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성서를 『계약』사상을 무시하고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빵의 기적』기사{記事}도 메시아의 기적으로, 후{後}의 교회의 이 예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봄은 무리가 이닐 것이다. 쉬바이쩌와 같은 몇몇 사람들이 단적으로 예수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저 예전을 거행한 것에 불과했다고 본다면, 마르코 복음 6장 42절에 나오는『사람들은 모두 배 불리 먹었다』는 내용에서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한 구절 에서 예수는 단지 영혼 구원의 상징으로서『빵의 기적』을 베풀지 않았다는 것, 영육을 분 리해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는 물질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수에게 있어서는 후{後}의 예전에서 보여지는 것 같은 특정의 물질만이 영적 구제의 표 상이 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그의 존재 전체가 神의 표상이며, 현실이었다. 그 의 손이 닿는 곳마다 모든 물{物}이 神의 기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서 전{全} 생활이 바로 성사{聖事}이다. 이것은 그가 神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죽기 직전에,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특정의 가시{可視}적인 형{形}을, 불가 시적인 구제의 성사{聖事}로 남겼다고 하는 것,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최후 만찬이다.『빵의 기적』기사{記事}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예수의 전{全}생활이 신앙 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대의 특색도 전{全}생활을 신앙으로 바꿔 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챤들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생활문제를 놓고, 이것을 처음부터 사 회적인 경제법칙의 지배하에서 생각하고, 거기에 인간적인 상식을 집어넣는 것이 고작인데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마태 6: 34}는 것을 철저하게 전 {全}생활에 걸쳐 우리는 관철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 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3}.『믿음으로 의롭게 된다』{창세 15: 6}. 우리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믿고, 그것이 실현되어지는 생활을 해야 한다. 여기서 전{全}생활을 통한 철두철미한 신앙 생애{神仰生涯}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全}생활적 신앙의, 뚜렷하고 농도가 짙은 종말적인 색체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삼투되어야 할 것이다.
PS: 김정원 신부님 강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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