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의 향기 (성소주일) | |||
---|---|---|---|---|
이전글 | 오월의 신부(新婦) | |||
다음글 | 엑끌레시아의 사명 | |||
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5-11 | 조회수1,652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 2003년 5월 11일 (일) -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오늘 부활 제4주일은 40회를 맞는 성소(聖召)주일이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심각한 사제부족으로 목자 없는 양떼가 너무 많아진 사실을 심려한 나머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하여라"(마태 9,37-38) 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聖召)의 날로 정하였다. 이 날은 세계의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사람 낚는 어부"(마태 4,19)의 사제성소(司祭聖召)에 응답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신자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수도(修道)성소, 결혼(結婚)성소, 평신도(平信徒)성소 등의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의 복음] 요한 10,11-18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복음의 향기]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하여 당신을 "양이 드나드는 문"이시며, "착한 목자"로 계시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11절)는 장엄한 표현으로 오늘 복음은 시작된다. 예수께서는 앞서 자기 보다 먼저 온 사람들을 모두 도둑이며, 강도라고 전제하셨다.(8절) 이것은 복음서 저자가 예수님 시대이후 나타난 거짓 메시아들을 가리킨 것으로 이해된다. 그에 비하여 예수님은 진정한 목자로서 구약(舊約)의 약속을 온전히 실현시키실 이스라엘의 참 목자로 파견되었다는 것이다.(예레 3,15; 23,4; 에제 34,23) 착한 목자는 품삯을 받는 삯꾼과는 달리 자기 양들을 신선한 목초지로 이끌 뿐만 아니라 양들이 위험에 처하면 자기 목숨까지도 바친다.(11-13절) 착한 목자는 자기 양우리에 있는 양들뿐 아니라 이에 속해 있지 않는 다른 양들에게까지도 신경을 쓴다. 이들에게도 자기 목소리를 가르쳐 자기 양우리로 이끌어 올 것이다.(16절) 목자와 양의 비유는 결국 착한 목자이신 예수께서 다른 생명을 자기 생명으로 구하심을 선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강요받지 않고 완전한 자유의지에 의해 당신 생명을 온전히 죽음에 내어 부치신다. 이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은 거꾸로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생명을 바칠 권리와 다시 얻을 권리를 다 가지시는 것은 그분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17-18절) 이것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구원계획인 것이다.
오늘 복음 안에 들어 있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한 신학적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 예수님은 자신을 양이 드나드는 문으로, 자기 양떼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착한 목자에 비유하시어 자신을 종말론적 중개자요 절대적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신다.(그리스도론) 예수님의 지상파견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시려는"(10절) 것이며, 양떼는 생명을 바치는 착한 목자를 통하여 구원된다.(구원론)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양떼들뿐 아니라 다른 양들에게도 자기 목소리를 익히도록 가르치시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며(구원의 보편성), 삯꾼과도 같은 거짓 목자들에게 혹하지 않고 양떼의 편안한 삶을 도모하신다.(교회론)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生命)보다 귀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들은 이 생명으로 삶을 꾸려간다. 그 삶이 온전하고, 성공하고, 행복한 삶이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다. 사람들은 보통 남보다 더 나은 재물, 권력, 명예 등을 생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화목한 가정, 착한 자녀, 안정된 직업 등을 생각할 수 도 있다. 이런 생각들은 사실 삶의 어느 한 부분에만 머물러 있는 생각이다. 우리는 생명으로 가꾸어 가는 인간의 삶을 어느 한 부분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삶 전체, 즉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생각하여야 한다. 사람이 혼자 힘으로 태어날 수 없고 스스로 자신의 장례를 치를 수 없듯이 한 삶은 다른 삶을 통하여 아름답게 가꾸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삶에 대한 봉사(奉仕)이다. 우리가 사제(司祭)로 살든, 수도자(修道者)로 살든, 결혼(結婚)하여 가정을 위해 살든, 아니면 독신(獨身)으로 혼자 살든, 어떤 모양으로 살든 그 삶이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의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삶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걸어 주셨다. 그분은 착한 목자로서 양떼인 우리를 하나 하나 이름 붙여 불러주시고, 좋은 목초지로 인도해 주시며,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나만으로도 너만으로도 존재할 수 없고, 오직 나와 네가 함께, 그리고 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