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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부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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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15 조회수1,488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3년 5월 15일 (목) -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3,16-20

<이제 너희는 이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다.>

 

[복음의 향기]

 

요한복음의 제2부(13장-21장)에 속하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마지막 가르침(13장-17장)의 첫 부분을 들려준다. 오늘 복음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극진한 사랑, 즉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요한 13,1-11(주님수난 성목요일 복음)의 내용을 상기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고 나서 겉옷을 입고 식탁에 돌아와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는지 알겠느냐?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12-15절) 이는 스승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행위에 대한 설명으로서 제자들이 서로간에 어디까지 겸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어디까지 따라해야 하는지 본(本)을 보여 주셨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자주 서열(序列)다툼을 벌였다. 제자들은 자기들 가운데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는 문제를 두고 다투기도 하였고(마르 9,34),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영광을 차지하시는 그 날에 영과의 자리 오른편과 왼편 자리를 부탁하기도 했다(마르 10,37).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누가 첫째가 되고자 한다면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35), 또 "너희 사이에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44) 라는 역설적인 가르침을 내리셨다. 그러나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은 한 발 더 앞서간다. 공관복음은 "누구든지 첫째나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종이 되어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요한복음의 핵심은 서열(序列)에 관계없이 "모두가 마땅히 서로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서열(序列)과 무관(無關)하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마땅히 서로를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겸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반론의 제기도 예외도 용납되지 않는다. 주인이시며, 스승이시고 파견하시는 주님 스스로가 본보기를 보이셨으니 말이다. 종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해서 칭찬 받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오늘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마땅히 서로를 섬기는 일을 실천하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신다.(13,17) 이 축복은 곧 행복이며, 겸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빛소리 교회>의 이철 담임목사님의 "겸손한 사람"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첫째,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잘 받아들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지나치게 우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등감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건전한 자화상을 가지고 삽니다. 자신에 대해 불만족하거나 잘 보이려고, 지나치게 잘하려고 힘쓰는 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나으면 나은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그를 시기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남이 나보다 나으면 견디질 못하고 조금 나보다 못하면 멸시를 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 남에 대해 자주 섭섭해하는 사람, 남이 하는 것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교만한 자아(自我)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겸손한 사람은 환경에도 잘 적응합니다. 우리가 환경을 탓하는 까닭은 내가 그런 환경보다 더 좋은 것을 누려야 한다는 부유한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면 어떤 환경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항상 자족(自足)하면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넷째, 진정으로 겸손하면 하느님께 기도하고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도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까닭은 기도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정말로 겸손하고 거지와 같이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절박한 경우에 처해있고,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겸손한 마음이 있으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하다는 말은 자주 하면서도, 멸시를 받거나 무시당하는 일을 만나면 참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자주 봅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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