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의와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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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표순 | 작성일2003-05-16 | 조회수1,47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의와 사랑 ☜
성서의 진리는 神의 의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신의 의는 절대 사랑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 니 신의 의는 신의 사랑에 까지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시편 85: 10}. 십자가 상에서 당신의 독자를 우리 대신에 벌하여, 죽게 하신, 죄인을 죽도록까지 사랑하여, 모든 고통을 참고,피를 흘리며, 살을 찢은 우리 주님, 십자가 마음은 분명히 의에 일관된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이것은 의론{義論}의 문 제가 아니고, 우리 신앙생활에 깊은 관계가 있는 실제의문제인 것이다. 예수꼐서는 여기서 너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 주지 않으면 하늘의 아버지도 너희의 죄를 사해 주지 않는 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십자가의『죄의 사함』에 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닌가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놓고, 그것을 마음으로부터참으로 사해 주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 없는가에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사함』의 사랑을 우리가 피부로 느낄 때, 우리는 참으로 사람을 사해 주고,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가 있는 것이다{마태 6: 14-15}. 우리가 사람을 사해 주고,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을 때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언 제나 자기가 의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의의 앞에서 참으로 자 기가 아직도 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가 완전히 깨어 지는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의를 일관하고 있는 神의 사랑의 마 음을 알고, 神과 인간을 철저히 사랑하는 때인 것이다.
참으로 사랑만의 사람은 자기의 의를 놓고, 그것을 기뻐하는 마음을 근절{根絶}할 수가 없 는 것이다.『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선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 3-4}.고 한 말씀을 철저히 생활화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의 의를 놓고, 그것을 기뻐하는 마음을 참 으로 근절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랑은 아직도 충붆 그리스챤 안에서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이 시대에 종교개혁이 있어야 한다면, 분명히 그것은 사랑이 의한 개혁이라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의에 일관된 사랑의『길』을 우리가 묵묵히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신앙에 의한 義』라는 표어 밑에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소위 신교주 의{新敎主義, Protestan-tism}의 특징은 이 이후『신앙』제일이었고,『神의 義』의 문제의 진정한 추구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른 이유가 많이 있었으리 라고 생각한다. 개혁자는 당시 가톨릭 교회의 사라에 대해서『잘못』있다고 들고 나섰다. 가톨릭 교회의『사랑』은 일면 성사와 결합된 채 다분히 마술적이며, 타면 그의 공적주의 때문에 적어도 도덕적이 것으로 왜곡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신교주의는 당초 사랑보다 신 앙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신교주의에도 그 사랑이 충 분한 전개를 보아야 할 것이다.
PS: 김정원 신부님 강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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