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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부활5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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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19 조회수1,505 추천수5 반대(0) 신고

◎ 2003년 5월 19일 (월) -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4,21-26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협조자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

 

[복음의 향기]

 

우리기 익히 알고 있듯이 유독 요한복음사가만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긴 고별사를 보도한다.(13-17장) 그러나 성서학자들은 13-14장이 요한복음의 원초적인 고별사에 속하고 15-17장은 추가로 편집된 것으로 주장한다. 요한복음 21장이 추가로 편집된 것과 같이 15-17장도 요한복음 공동체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후에 첨가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5-17장은 13-14장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복음(요한 14,21-26)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후 행하신 기나긴 고별사(13-17장)의 원초적인 첫 부분(13-14장)에 해당된다. 요한복음 13장은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의 발을 씻김(1-11절), 발을 씻겨줌의 의미(12-20절), 유다의 배반예고(21-30절), 새계명 선포(31-35), 베드로의 장담과 배반예고(36-38절 끝) 등을 보도하고 있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께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심을 선포하신 내용과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1-14절), 성령의 약속(15-26절), 그리고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27-31절 끝)에 관한 가르침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별사를 요한복음 13-14장으로 한정할 때, 고별사 전체를 주도하는 가르침은 ①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 ② 아들의 자기계시와 정체, ③ 성령의 약속과 오시는 성령의 정체성 공개(公開)로 요약된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순서대로 다루어지거나 독자적인 단락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고별사 전체를 오가는 흐름을 주도한다. 물론 성령의 약속과 오시는 성령의 정체성에 관한 보도는 14,15-26에 한정되는데, 여기에서도 사랑의 계명은 함께 언급된다. 이 단락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성령의 약속과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의 시선을 오늘 복음(14,21-26)에 집중시켜보자. 우선 예수께서는 사랑의 테마를 재삼 언급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는"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통하여 아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21절) 그런데 11제자 중에서 유다 타데오가 예수께서 세상에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한정하여 나타내 보이려 하는 의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22절) 이 질문은 사실상 불만과 의구심을 담은 질문이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가 "국가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참에 왜 예수께서 세상의 왕으로 군림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질문의 의도를 비켜간다. 그것은 예수께서 분명히 세상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으며, 또 메시아로 자신을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이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메시아적 자기계시는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 즉 적어도 제자들에게 한정되는 셈이다.(23-24절) 제자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된 말씀을 들었으며, 듣고 응답하였으며, 응답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사랑에 머물고 그 사랑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거처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스스로가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살아 있는 집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26절)을 통하여 밝혀지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다.

 

이미 16-17절에 걸쳐 언급되었고, 26절에 다시금 언급되는 <성령의 약속과 성령의 정체성>에 관한 보도는 요한복음의 특허품이다. 신약성서 전체에 "성령"이라는 단어는 235번 등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용도는 "성령"이라는 단독적인 표현에 머물거나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보도된다. 요한복음사가도 처음에는 이런 맥락에서 "성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1,32; 1,33; 3,5; 3,8; 3,34; 7,39; 20,22 참조)  그러나 요한복음의 고별사에서 보도되는 표현은 전혀 다르다. 다른 곳에서는 "성령"이 다소 "비인격적 표현"에 머물거나 "하느님께 속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엇"의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지만, 여기서는 글자 그대로 "그분"(14,17)이라는 인칭대명사를 부여하여 하느님의 또 다른 "위격"(位格)으로, 나아가 "협조자", "진리의 성령"으로 계시하고 있다.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진리의)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26절) - 병행구절 15,26; 16,13; 16,15 참조. 이로써 예수께서는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본성(本性)을 지니신 제 3의 위격, 즉 "하느님 성령"으로 계시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생명 안에 머물게 됩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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