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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27 조회수4,386 추천수43 반대(0) 신고

5월 28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요한 16장 12-15절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냥>

 

그제는 이곳을 거쳐간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아직 서른도 안된 나이였지만 홀로 서기 위해서 무진 고생을 다 겪은,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살만해진 "의지의 청년"이었습니다.

 

그 친구, 사실 당시 보통내기가 아니었지요. 무엇보다도 고집이 이만저만 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수 백 번을 타이르고 꼬시고 "별짓"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떠나갔었지요. 홀로 살기에는 너무도 어린 열 네 살의 나이에 말입니다.

 

그 후로 그 친구가 겪었던 고생은 소설을 몇 권 써도 남을 정도의 "죽을 고생"이었습니다.

 

헤어지기 전 그 친구가 제게 했던 말이 저희 아이들에게 너무도 절실한 말이었기에 두고 두고 써먹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살짝 맛이 갔었지요. 그때는 왜 그렇게 신부님 말씀이 제 귀에 들어오지 않던지요? 그때 제가 신부님 말씀을 듣고 남아있었다면 훨씬 덜 고생을 했었을텐데... 한번만 더 생각하고 행동했었다면..."

 

아이들과 살면서 가장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가 먹혀들지 않을 때입니다.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아무리 눈물로 호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예 막무가내입니다. 주먹이 막 떨리다 못해 주먹이 울음을 울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그런 답답함을 조금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뭔가 현실적인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영적이 말씀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뭔가 특별한 것, "이거다" 하는 것만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초월적인 말씀은 귀찮고 어렵기만 했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음을 인식한 예수님은 나중에 오실 성령께 당신이 못 다하신 부분을 맡겨드립니다. 성삼위께서 온전히 일치하여 우리 인간을 위해 봉사하시고 우리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성자와 성령의 상호협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예수님 말씀이 너무 아득하고,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그냥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냥 성령의 손에 우리를 맡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냥 그분의 품안에 뛰어드는 것, 그것 역시 소박하지만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입니다. 그냥 우리 아버지기에 사랑을 드리고 그냥 우리 아버지기에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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