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의 향기 (부활7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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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6-07 | 조회수1,477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 2003년 6월 7일 (토) -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21,20-25 <그 제자가 이 일들을 글로 기록한 사람이며,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 때에 20) 베드로가 돌아다보았더니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 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묻던 제자였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주님,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22) 예수께서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제자는 죽지 않으리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하지는 않으셨고 다만 "설사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뿐이다. 24) 그 제자는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글로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의 향기]
예수님의 부활시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에 걸맞게 오늘 미사에는 요한복음의 끝 부분이 봉독된다.(21,20-25) 우리는 요한복음 21장이 15-17장과 더불어 추가로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제 복음에서 보았듯이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단독으로 내세워 사랑의 다짐을 받았고, 그 사랑 위에 당신 양떼의 사목(司牧)을 맡기셨으며, 아울러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암시하셨다. "나를 따라라"(19절)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따라 나섰다. 그 뒤를 애제자(愛弟子)가 따르고 있었다.(20절) 자신의 미래를 계시 받은 베드로는 애제자의 미래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주님,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21절) 하고 예수께 물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수제자(首弟子)와 애제자(愛弟子)가 차지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위상(位相)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앞서간 복음에서 공동체의 수장(首長)으로서의 위치를 보장받은 베드로가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한 애제자의 위상도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호기심과 경쟁심을 스승은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리셨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너는 나를 따라라."(22절) 예수께서는 애제자의 미래가 베드로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베드로의 추종만을 요구하신다. 사실 제자들의 제각기 갈 길은 예수님의 계획안에 들어있다. 제자는 오직 스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제자 됨의 본성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공동체의 일치를 바라셨고,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구성원 모두의 강압적이거나 획일적인 추종은 원치 않으셨다. 즉 내가 이러하니 너도 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획일(劃一)은 예수님의 원의(願意)가 아니다. 교회 안에는 서로의 비교(比較)나 우열(優劣)가림을 통한 획일적인 시도의 발상이 적지 않게 있다. 자신의 신심(信心)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의 신심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점은 믿음의 공동체가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본인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신부(神父)로서 이렇게 사는 데 저 신부는 왜 저렇게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남을 험담하면 그것은 일치를 깨는 일이며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자기를 비추어보고 그 안에서 남을 위해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이는 일치를 도모하는 일이다. 어떤 모양으로 살던 삶은 자신의 몫이다. 그저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데 익숙해야 할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는 순위(順位)도 권위(權威)도 없다. 있는 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제자 됨의 신의(信義)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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