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10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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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6-10 | 조회수1,558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 2003년 6월 10일 (화) -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5,13-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에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15)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16)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예수님의 산상설교(5-7장)가 이어진다. 산상설교의 주된 내용은 두 가지로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율법의 참된 정신이다. 산상설교는 예수님의 강생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에 필요한 새로운 헌법(憲法)을 선포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율법(구약)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던 것처럼(출애 19-24장) 예수께서도 산 위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시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제고하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헌법(신약)으로 삼으려 하신다. 산(山)은 하느님 현존의 표현이며, 산 위에서 내려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자기계시(自己啓示)이다.
산상설교의 첫 가르침으로 진복(眞福)이 선언되었다.(5,1-12) 오늘은 소금과 빛에 대한 가르침이 내려진다. 소금과 빛의 본질과 역할에 대하여 달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위한 제자들의 본질(本質)과 사명(使命)을 소금과 빛의 상징으로 조명하고자 하신다. 소금은 본성상 음식의 맛을 돋구고 부패를 막으며, 빛은 어둠을 밝히고 사물을 식별하게 해준다. 제자들의 사명이 이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셈이다. 결국 소금은 제자들의 내적(內的) 자질(資質)을, 빛은 제자들의 외적(外的) 활동을 의미한다. 내적 자질과 외적 활동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행동(行動)은 본성(本性)을 따른다"(agere sequitur esse)는 윤리적 속담이 있듯이, 제자 됨의 내적 본질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외적 활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제자들이 본성에 따라 수행하는 외적 활동의 결과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善)하심을 세상이 찬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을 잘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소금과 빛의 역할 상실을 더 강조하고 계신다. 즉,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등불을 됫박으로 덮어두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금과 빛의 의미와 역할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제자들의 본질과 사명이 역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는 분명 제자들과 교회에 대한 경고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많다. 그러나 성서는 "사람이 사는 데 제일 필요한 것은 물과 불과 쇠와 소금이며, 밀가루와 우유와 꿀, 그리고 포도즙과 기름과 의복이다"(집회 39,26)고 한다. 예수께서 이 중에서 유독 소금을 택하여 제자들의 본질에 비유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또한 제자도 교회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위하여 꿀이나 기름, 또는 설탕이나 버터가 되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교회가 세상을 위한 맛과 부패방지의 상징인 소금이, 그리고 밝음을 주는 빛이 되어 살아주길 원하시는 것이다. 교회가 설탕이나 버터가 된다면 세상의 존경과 사랑을 자기가 받을 것이나, 소금과 빛이 된다면 세상의 찬양과 감사는 하느님께서 받을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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