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낙화의 순간을 위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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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6-10 | 조회수3,707 | 추천수42 | 반대(0) 신고 |
6월 11일 성바르나바 사도 기념일-마태오 10장 7-13절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낙화의 순간을 위해서>
우연히 "떠남"과 관련된 그럴듯한 글귀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나무가 봄에 꽃피우고 여름에 애쓴 이유는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떨어져 내릴 그 낙화의 순간을 위해서입니다."
저 역시 사람이나 돈, 옷이나 기타 잡동사니들에 대한 집착이 무척 큰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금씩이나마 초연해져간다는 느낌이 들어 흐뭇해하고 있지요.
요즘 저는 최대한 적게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가능하면 새것을 사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다 보니 침실은 침대시트만 갈면 즉시 손님방으로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방이 훤하니 마음도 여유가 생기지요. 물건으로부터 초연해지니 삶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서품을 앞두고 있는 형제들에게 저는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지나친 강요를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서품식을 맞아 누가 뭘 사준다고 하면 "괜찮습니다. 한평생 가난한 사제로 살도록 기도해주시는 것이 제게 가장 큰 선물입니다. 꼭 제게 뭘 해주시려면 그 마음으로 선교후원회에 가입해주십시오"라고 말하라고 강요를 하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효과적인 복음선포를 위해서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남"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봉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색한 모습은 떠나야할 순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안 뒤집힐려고 매트에 딱 달라붙어 안간힘을 쓰는 레스링 선수 마냥 지독하게 자리에 집착하는 모습처럼 안쓰러운 모습은 다시 또 없습니다.
수녀님들이 가장 존경스러워 보일 때는 인사발령을 받을 때마다 5톤 트럭 한번이나 여러 번에 걸친 승용차가 아니라 가방 두 개만 달랑 양손에 들고 버스 타고 떠나시는 모습입니다. 아쉬움이 많겠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미지의 땅을 향해 미련 없이 떠나가는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물질에 대한 유혹이란 참으로 큰 것이어서 모으면 모을수록,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더 갖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면 청빈한 생활, 단순하고 소박한 삶과는 담을 쌓게 되고 말지요.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복음선포나 자기 이탈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맙니다.
묵은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지닌 것이 많으면 그 지닌 것들에 신경을 쓰게되어 복음전파나 영혼구원은 뒷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하루 보다 단순하게 보다 소박하게 보다 홀가분하게 살기 위해서 버리고 또 버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그 모든 집착과 이기심과 사리사욕에서 과감하게 떠나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이웃들의 요청에 즉시 응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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