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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10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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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6-13 조회수1,452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3년 6월 13일 (금) -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  마태 5,27-32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을 벌써 그 여자를 범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하지 마라’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29) 오른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30)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31) 또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간섭하지 말라." 어릴 적 첫영성체 교리반 시절에 한 아이가 십계명을 외우면서 자기 딴에는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내뱉은 말이다. "간음"(姦淫)이 무엇인지 그 뜻도 제대로 모르던 우리들 어린 시절에는 남을 "간섭"(干涉)하는 것만으로도 십계명을 범한다고 믿었다. 나이가 들면서 간음과 간섭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게 되었고, 성(性)을 상품화하는 사회적 풍토나, 아직 자립할 수도 없는 어린 사람과의 원조교제나, 돈만 된다면 어디나 비집고 들어서는 러브호텔 건립 등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인간은 왜 이럴까" 하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런 것들을 이성(異性)에 대한 인간의 욕정(欲情, concupiscence)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의 혼인법은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있고, 일부다처제도 허용하고 있었다.(신명 21,15) 그들은 항상 여자는 남자에게 위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였고, 경건한 자들은 여자가 다가오면 인사를 하기는커녕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결혼한 여자가 독신 남자나 비유대인과 성적 관계를 맺으면 간음을 범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혼인한 남자가 그와 동일한 행위를 해도 간음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았다. 당시에 여자는 남자와 동일한 차원에서 취급받지 못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혼인법이 완전히 남자의 편에서부터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간음을 예방하려는 경우에도 여자의 권리를 보호하려기 보다는 여자의 위험성을 더 강조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남의 아내를 유혹하는 남자는 자신의 혼인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혼인을 깨뜨리는 셈이 된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혼인법과 결혼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신다. 오늘 복음에는 두 가지 대당명제가 등장한다. 이는 <간음하지 말라 - 음란한 생각조차 품지 말라>(27-30절)는 것과 <이혼장을 써 주어라 - 아내를 소박(疎薄)하지 말라>(31-32절)는 것이다. 십계명의 제6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출애 20,14; 신명 5,18)는 것이며, 제9계명은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출애 20,17; 신명 5,21)는 것이다. 어디서 간음이 시작되는가? 구약의 율법이나 오늘날 현대의 법률 모두가 "부부가 아닌 남녀간의 외적(外的)으로 성사(成事)된 성적(性的) 행위"를 간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들의 생각을 후려치신다. 첫째 대당명제(21-26절)에서 화를 내는 것이 살인과 같은 비중을 지닌 것으로 엄하게 경고되었듯이, 둘째 대당명제에서도 내적인 "음란한 생각"이 외적인 "간음한 행위"와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음란한 생각은 "눈"(29절)으로, 간음한 행위는 "손"(30절)에 비유됨을 주의해야 한다. 눈과 손은 엄연히 다르다. 눈은 보는 기관이고 손은 행하는 도구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손이 행한 외적인 범행은 마땅히 죄가 될 뿐더러,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품는 음란한 생각조차 죄가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논리(論理)이다. 예수님의 논리가 이렇다면, 세 번째 대당명제도 자동적으로 이해된다. 즉 음행한 경우이든, 다른 어떠한 경우이든 간에 아내에게 이혼장을 손에 쥐어 소박(疏薄)하게 되면, 그 버림받은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 된다. 결국 예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한 번 맺은 부부관계는 죽음이 이를 갈라놓을 때까지 유효하다는 결혼관을 제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오늘 남자가 품는 여자에 대한 음란한 생각이 이미 여자의 혼인을 깨뜨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음을 경고하신다. 예수께서는 여성의 권리와 생활을 중시하시면서 여성의 권리와 생활이 남성의 욕망에 의해 위협받아서는 아니 됨을 가르치시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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