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11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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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6-16 | 조회수1,225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 2003년 6월 16일 (월)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5,38-42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40)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41)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오늘 복음은 다섯 번째 대당명제를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명제를 폐기하시고 <앙갚음하지 마라>는 반명제를 제시하신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는 가해자에게 피해와 똑같은 모양의 형벌로 갚아주는 동태복수법(Talio, 同態復讐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바빌론 제1왕조의 6대 대왕인 함무라비(Hammurabi, 재위 BC 1792-1750)의 법전에 명기된 법조문이다. 동태복수법은 고대문화의 일반적 법조문으로서 그리스와 로마도 이를 따르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이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고가 생겨 목숨을 앗았으면 제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출애 21,23-25; 레위 24,20; 신명 19,21 참조)
동태복수법은 언뜻 보기에 적용이 쉽고, 상당히 이성적이며, 정의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 법조문이 개인간의 사사로운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대표나 판관이 가해자에게 내리는 법적인 선고를 말한다. 어쨌든 예수께서는 "앙갚음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요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예수께서는 앙갚음을 하지 않는 것에서 가만히 있지 말고, 악(惡)을 선(善)으로 되 갚으라고 하신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마저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려고 재판 거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와 십리를 같이 가 주라는 것이다. 또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악(惡)을 관용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대사제 안나스가 예수를 심문하는 자리에서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묻자 예수께서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라. 내가 한 말은 그들이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경비병이 예수의 뺨을 때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른 뺨을 돌려대지 않으시고 "내가 한 말이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 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요한 18,20-23 참조)고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보라. 악은 분명히 악이다. 예수께서 악을 선으로 되 갚으라고 하시고,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베풀라고 해서 옳고 그름의 척도가 파기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악의 도전을 받았을 때나 어떤 요구를 받았을 때, 이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의 요구는 분명 실천하기 어려운 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악보다는 선을, 법보다는 사랑을, 강함보다는 약함을 더 선호하시는 것이다. 이 선호는 그리스도의 참다운 자유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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