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11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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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6-18 | 조회수1,692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2003년 6월 18일 (수) -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2)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5)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17)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18)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도래한 하느님 나라에 통용될 새로운 "의로움"을 6개의 대당명제(5,21-48)를 통하여 조직적으로 설명하셨다. 대당명제는 구약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으로 피력되었으며, 이 새로운 해석은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는 곧 법의 형식논리를 넘어 법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6개의 <기본명제-반명제>를 다시금 요약하자면, ① 살인하지 말라 - 성내지도 말라(21-26절), ② 간음하지 말라 - 음란한 생각조차 품지 말라(27-30절), ③ 이혼장을 써 주어라 - 아내를 소박(疏薄)하지 말라(31-32절), ④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33-37절), 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앙갚음(보복)을 하지 말라(38-42절), ⑥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43-47절)는 것이다. 이렇게 6개의 대당명제는 구약의 가장 중요한 십계명의 범주 안에서 계명자체를 사로잡는 계명정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의로움"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이 요구는 하느님의 완전성(完全性)을 닮아 가는 것(48절)으로 요약된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4일간 평일미사의 복음으로는 산상설교의 둘째 부분(마태 6장)이 봉독된다. 마태오복음 6장은 대당명제와 같은 비중의 율법(律法)에 속하지는 않지만 신앙인의 성덕(聖德)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신앙인의 성덕으로 자선(慈善)과 기도(祈禱)와 단식(斷食)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제시하신다. 그렇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유대교 안에서 널리 수행되었던 덕목(德目)들이며, 예수님 당대에는 특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선행(善行)을 쌓을 목적으로 사용했던 수단들이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새로움은 무엇인가? 일단 이러한 선행(善行)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부러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1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행이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수행되거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 자체가 이미 상(償)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償)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선행지침을 엄수(嚴守)해야 한다. 즉,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것"(3절)이며,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할 것"(6절)이고, "단식할 때 얼굴을 깨끗이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할 것((17절)"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숨을 일까지 모두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답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내리시는 선행지침을 글자그대로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모든 선행이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숨을 일도 다 보시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선행을 행하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자신의 선행을 남들이 알아줄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받을 상을 다 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선을 통하여 사랑을, 기도를 통하여 신뢰심을, 단식을 통하여 겸손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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