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누고 싶은 그날의 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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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순 | 작성일2003-06-30 | 조회수1,752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중학교 2학년의 딸을 둔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어느 날 딸을 옆 자리에 태우고 운전을 하던 중, 횡단보도가 아닌 길을 건너는 행인을 피하려다가 그만 큰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차는 찌그러져 사람이 빠져나올 수가 없었고, 살은 파여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차츰 정신을 잃어가면서 가장 참기 어려웠던 아픔은 쇠조각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전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는 그 참혹한 상황에서도 옆에 앉아있던 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죽어도 괜잖으니 제발 제 딸만은 살려 달라고..." 다행히 딸은 중상이 아님을 확인 한후 다시 형제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사경을 헤메다 살아 난 형제는 끝내 한쪽다리를 잃고 7번의 대수술을 받는 그 불행속에서도 계속해서 딸을 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6월 8일 '성령 강림 대축일' 우리 본당 신자의 신앙체험을 본당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들려주신 이 이야기는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도 점점 소외감을 느끼는 이 땅의 아버지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사랑에 동참하고 있는 '나는 죽어도 좋으니 너는 살아야 한다'는 주님의 뜻이 삶을 통해 전달되는 아버지들의 절박한 기도를 가족들은 얼마나 귀기울이며 살아가는가를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정년퇴직자와 불황으로 직장을 잃는 가장들을 위해 그들의 늘어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가족들의 역활은 신앙의 빛인 작은 성령으로 변화되어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말라고 성령강림 주일을 맞아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하시는 듯 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예수성심 성월'에 으뜸의 묵상자료가 되었던 신부님의 말씀은 며칠 전에 다녀 온 시애틀에서 여러 인종의 노숙자들의 행렬에 끼어 한끼의 식사를 해결하려는 한 외국의 아버지의 모습을 눈여겨 보면서 더욱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당시 밤샘을 하며 고뇌에 찬 목소리로 사건현장의 상황을 중계하던 와이셔쓰 소매를 반 쯤 걷어올린 아나운서의 모습처럼, 아직 거리의 때가 묻지 않은 그의 모습은 웬지 온갖 우상을 가슴에 담고 있는 우리에게서 밀려 난 예수님의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신 오늘의 주님 말씀이 더 절절히 가슴으로 스며드는 아침입니다. 그래도 마음은 웬지 기쁨니다. 이 기쁨도 이 글을 읽는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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