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죽기를 작정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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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7-05 | 조회수2,214 | 추천수29 | 반대(0) 신고 |
7월 6일 일요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마태오 10장 17-22절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죽기를 작정하고>
천주교 박해시대 당시 조선이란 땅은 동방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100% 죽음이 확실한 사자굴과도 같은 선교지가 조선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에 선교를 지원했던 서방 선교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조선으로 입국을 하셨지요. 조선으로 떠나기 직전 선교사들은 죽음 준비작업들을 하셨습니다. 부모님께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눈물의 작별의 편지들을 쓰셨지요.
동료사제들, 자신의 주교님께 하직 인사를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엄한 유서를 남기고 조선으로 건너오셨던 것입니다.
조선에 입국하셨던 선교사들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선교사들의 조선행(朝鮮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무죄한 어린양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으셨던 모든 선교사들의 길은 오직 처절한 십자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길이었습니다.
이런 선교사들로부터 사제수업을 받으셨던 김대건 신부님 역시 이런 숙연한 분위기를 어찌 파악하지 못하셨겠습니까?
김대건 신부님의 입국 역시 목숨을 건 길, 일단 들어오면 100%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꿈결조차 그리웠던 고국의 산천, 입국을 위해 그 숱한 나날들을 기다려왔던 조국인데...이제 그 고향 땅에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참한 죽음이라니...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박해가 가라앉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국할 수도 있었습니다. 박해의 세월이 지나가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학문을 공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입국을 뒤로 좀 미루고 중국에서 사목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의 뇌리 속에는 오직 목자 없이 길 잃고 방황하는 동포들의 고통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목자 없어 서러운 민중들 한 가운데로 투신할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길, 예정된 죽음의 길, 굶주림과 고문, 갖은 조롱과 처참함만이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제가 가고 있는 길을 반성합니다.
죽기를 작정하고 시작한 사제의 길이었습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는 일은 기본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한 수도자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작은 것 하나 양보하지 못하고 티격태격되는 제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 하찮은 고통 앞에서도 세상이 끝난 듯이 불평불만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제 삶이 참으로 한심하기만 합니다.
오늘 하루 김대건 신부님처럼 죽기살기로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고 평소보다 좀 더 희생하고 좀 더 자신 대해서 죽는 "작은 순교"를 실천하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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