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15주간 월요일) | |||
---|---|---|---|---|
이전글 | 성서속의 사랑(10)- 돈, 섹스, 권력 | |||
다음글 | 그런 십자가만은 | |||
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7-14 | 조회수1,383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2003년 7월 14일 (월) -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0,34-11,1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며, 옳은 사람을 옳은 사람으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 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분부하시고 나서 그 근방 여러 마을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그 곳을 떠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평화가 아니라 칼을 준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행하신 파견설교(마태 10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지금까지 예수께서 말씀하신 파견설교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었겠으나,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말씀이 오늘 복음을 통하여 선포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보다는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시며, 집안의 식구들이 각자에게 원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칼을 내리쳐 온 가족을 풍비박산(風飛雹散) 내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의도가 과연 이런 것인가?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4,17)하시면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께서 도래하는 하늘 나라를 이런 내용과 묶으시려는 것인가? 아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하늘 나라를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진복선언과 산상설교(5-7장)의 가르침과 수많은 구마기적과 병자치유기적(8-9장)의 행적 등을 통하여 예수님은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신 분"(8,17)이심을 확인하였고, 그분에게 이 땅의 죄까지 사하는 권한(9,8)이 있음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은 다른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선 칼의 의미를 살펴보자. 칼은 베고, 잘라 분리시키는 일을 한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온 가족에게 칼을 내리쳐 아들과 아버지를, 딸과 어머니를,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서로 맞서게 갈라 세우시려는 의도를 살펴야 한다. 칼로 갈라진 아들과 아버지를 보자. 아들은 아버지 없이 있을 수 없고, 아버지는 아들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며, 세상의 어느 존재도 다 같은 원리에 속한다. 누구든 자신이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곧 우리들의 인간관계를 재삼 숙고하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만약에 아들이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지 아니하고 아버지와 분리된 상태에서 아들이라고 우긴다면 그는 아버지에게 "원수"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34-36절)
내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라면 제자로서의 내 존재는 무엇과 더 관련이 있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인가? 아니면 예수님인가? 물론 예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사람이 되려는 자는 자기 식구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결국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쳤으니, 제자들도 그분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며,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자는 잃을 것이고 오히려 잃는 자는 얻게 되는 것이다.(37-39절)
예수님의 부활로 힘을 얻은 제자들이 강림한 성령과 더불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들려주신 파견설교의 내용이 빈말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 수많은 이들이 복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바쳤다. 이렇게 성장한 교회 안에는 어느덧 여러 가지 직무가 생기고 이 직무를 맡은 교역자가 생기게 된다. 사도들로부터 시작하여 주교, 사제, 부제, 신자들에 이르는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전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이 비록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라고 하더라도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예수님의 대리자요 하느님의 교역자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나이지만 너에게 오늘 냉수 한 그릇이라도 건네며 하루를 연다.(40-42절)◆[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