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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에 맞는 「자기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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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07 조회수1,544 추천수7 반대(0) 신고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금) 말씀: 신명 4,32-40: 마태 16,24-28

 

오늘 복음의 토막어들은 아마도 가장 쉽게 떠올리는 성서의 문귀들 중 하나일 것이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

 

가장 흔히 암송하면서도 가장 실행하기 어렵고, 또 이 구절의 <바른 실행>도 어려운 것같다. 특히 오늘은 "자기를 버리고"라는 구절의 바른 실행에 관해 생각해보려한다.

 

사람은 저마다 모두 다양하게 창조되었다. 즉 자기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를 버리고 모두 같은 모습이 되라는 것인가? 물론 이 구절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자기중심적 자아’를 버리라는 이야기이지만, 그 자기중심적 자아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개인주의적 성격을 버리고 남을 위한 이타적인 실천으로 옮아가라는 말씀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반대로 남을 돕고 희생하는 데만 관심을 돌리는 편향된 성격을 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보다 많은 애정을 쏟으라는 것이다.  

 

또한 완벽주의인 성격의 사람은 완벽에 집착하는 자기를 버리고 자신과 타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의 바른 실천이 될 것이며, 너무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따듯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적극적 의미의 자기 비움이다. 또한 반대로 너무 따듯하고 감성적이어서 우유부단한 사람에게는 차가운 이성이 요구될 것이다.

 

이렇듯 자기 모습의 다양함에 따라 ’자기를 버리는 방법’, 또 ’자기의 참 목숨(하느님이 원하시는 자신의 완성된 모습)을 얻는 방법’도 다양하다. 자신의 특성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일률적으로 적용시킬 때 때로 더욱 편향되고 치우친 모습으로 기우는 부작용도 보았다.  

 

타인에게 베풀고 헌신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적 미덕이긴 하지만, 매사에 그런 식이다 보니 가정이 병들고 활동만 쫓아다니는 신자. 완벽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사람중심이 아닌 일중심의 공동체를 만드는 경우. 가슴만 따듯하여 번번이 사기 잘 당하고 사리판단에 문제가 있는 경우들이 바로 그런 예일 것이다. 모두 나름대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고 하다가 생기는 일이다.

 

그만큼 자기를 버리라는 말씀 안에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 그것은 때론 고통이다. 자기 안에 부정적 요소들을 직시하고 자기를 완성해가는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독서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면면히 활동하시는 주님에 대한 말씀을 들려준다. 개개인의 역사(삶) 안에서도 각기 다른 말씀으로 이끌어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주님은 오늘 나에게 어떻게 역사(役事)하실까? 모두를 이끄시는 ’우리의 하느님’도 만나야 하지만, 때로는 내게만 말씀해주시는 ’나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어느 날엔가 나도 그분의 업적을 화답송으로 노래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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