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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 도미니코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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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08 조회수1,627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3년 8월 8일 (금)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성 도미니코(1170-1221) 사제 기념일

   

[오늘의 복음]  마태 16,24-28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그 때에 예수께서 24)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5)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

28)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스승을 따라가는 방법

 

우리가 아는 수도회(修道會)는 구세주 예수를 직접적으로 추종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자기와 모든 사람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명상하며, 완덕(完德)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수도회는 일반적으로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을 수도생활의 지주(支柱)로 삼고 기도와 노동, 진리탐구, 사랑, 봉사의 정신을 실천하며 생활한다. 초기의 수도회는 수도승(은수자, 독수자)의 성격에 따라 동굴이나 광야에서 은둔, 고행, 금욕적 생활로 개인이나 소수의 모임형태로 일관되었으나, 베네딕토(480-543) 성인에 이르러 규칙서를 근거로 공동체생활을 하게 된다. 공동체생활의 특징은 특정한 장소에서의 정주(定住), 노동, 기도, 묵상, 관상에 있다고 하겠다. 이를 일컬어 관상수도회라고 한다. 중세기에 이르러 수도생활에 대변화가 일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활동수도회의 시초인 프란치스코 수도회(1210년)와 도미니코 수도회(1216년)의 창설이다. 이들 수도회는 걸식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하는 탁발(托鉢)수도회, 널리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교하고 활동하는 편력(遍歷), 또는 설교(說敎)수도회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활동수도회는 시대, 지역, 문화적 배경을 수용하여 선교, 교육, 문화, 의료, 사회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도직을 수행하는 수도회라 하겠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함께 탁발수도회의 시초가 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창설한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에스파냐의 칼라루에가에서 태어나, 팔렌시아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199년 사제가 되어 오스마 교구의 참사위원이 된다. 친구이자 주교인 디다쿠스와 함께 교황 이노첸스 3세(1198-1216)의 요청으로 프랑스 남부 알비주아 지방에 성행하던 이단 "카타리파"(극단 순결주의자)와 "발덴파"(극단 청빈주의자)의 회유를 위한 설교활동을 벌인다. 도미니코 성인의 감동적인 설교와 모범적인 생활은 큰 성과를 가져왔고, 1215년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설교수도회가 창립되고, 1216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1216-1227)에 의해 도미니코 수도회로 공식 인정되면서 급속히 유럽 전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성인은 1221년 8월 6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세상을 떠났고,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도미니코 수도회는 유명한 교회학자 알베르토 막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배출하였고, 1232년부터 종교재판을 주관함으로써 두려움과 미움의 대상이 되어 "도미니(Domini: 주님의) 까네스(canes; 사냥개들)"라는 오명(汚名)을 남기기도 했다. 오늘에 이르러 도미니코회의 학문적 공헌과 노력은 다시금 인정받고 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서 다루었던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에 이어 <예수 추종의 길>과 <종말의 시기에 관한 말씀>이 그 내용이다. 특히 <예수 추종의 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을 따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따르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승을 가장 잘 따르는 방법은 스승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을 통하여 주어진 베드로의 숙제에 대한 교과서가 될 수도 있다.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수난의 길을 가셨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오히려 목숨을 얻어 생명의 주인이 되셨듯이, 예수님의 제자도 똑같은 방법으로 스승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자신을 버리고, 목숨을 내어놓는 것만이 능사(能事)는 아니다. 자아를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자아를 긍정하는 것이고, 목숨을 버리는 것은 목숨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단지 긍정과 사랑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론)과 모범(실천)에 질서 지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요구를 글자그대로 따를 수도 있지만, 일찍이 "카타리파"나 "발덴파"가 교회의 단죄를 받았듯이 어느 것도 극단적인 방법은 옳지 않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하며,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일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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