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희망이 안보일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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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3-08-08 | 조회수1,57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8월 9일 연중 제 18주간 토요일 말씀(신명 6,4-13: 마태 17,14-20)
독서에서 모세는 백성에게 말한다. "너희 주 하느님께서 너희 선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로써 너에게 주겠다고 하신 그 땅에 너희를 이끌어 들이실 때가 되었다. 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너희가 채우지 않은,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들이 있고 너희가 파지 않은 우물이 있고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다. 너희는 그것을 마음껏 먹게 되리라. ..."
땅 한떼기도 없는 민족들에게, 그것도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서, 앞으로 주실 땅, 그것도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과 우물, 그 안에서의 풍요한 삶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신다고 생각해보자! (실은 이 대목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게 되고도 훨씬 후에 쓰여진 대목이긴 하지만... 그런 성서지식들은 고스란히 털어내고, 최종편집자의 의도인 성서의 순서 그대로 오늘은 묵상해보자!)
40년간을 사막을 떠돌던 유랑민족들, 수백년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난민들에게 땅이 생긴다는 희망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런데 땅을 거저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사악에게도 야곱에게도 약속하셨고, 그리고 모세와 백성에게도 약속, 아니 맹세까지 하셨던 땅이다. 한번도 그들은 땅을 달라고 먼저 요구해본 적이 없다. 후손을 달라고 해본 적도 없다. 구약성서 안에서 먼저 주시겠다고 나선 쪽은 언제나 하느님이시다.
백성들은 믿기지않는 그분의 약속을 믿던가 말던가 그것만 결정하면 되었다. 사실 믿어서 손해날 것도 없을 만큼 그렇게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복음에서는 간질병에 시달리는 아들을 예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가 치유를 부탁했다가 고치지 못하고 결국 예수께 와서야 치유를 받는 사람이 소개된다. 그러나 치유 자체보다는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탄식하시는 말씀이 이 대목의 초점이다.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으려 하지 않고 비뚤어졌을까?"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말씀이 연이어 강조되며 끝을 맺는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희망이 전혀 안 보일 때, 사방을 둘러봐도 캄캄한 어둠 뿐일 때, 밝고 푸르른 희망을 불어넣어주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희망은 어떤 실마리, 어떤 근거, 어떤 빛 하나라도 확인해야 희망이 생긴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에겐가 희망을 주려 해본 사람이면 느꼈으리라. 어떤 계획을 설명하고 그럴듯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심히 설명해도 희망을 갖게 하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는 것을...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납득시키고 근거를 대고 빛을 제시해야 겨우 희망이 일어났다가도 그 중 어느 하나가 예상과 달라지면 금새 희망은 사라지고 더 큰 절망에 휩싸이게 된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둠, 사면초가에 빠져있을 때, 끝도 한도 없는 어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는 어느 무엇에도 희망을 둘 수 없다.
그토록 철저하게 희망을 잃었을 때,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은 희망이 아니라 <믿음>이다. 불이라도 물이라도 마치 오늘 복음의 간질병 환자처럼 뛰어들고 싶은 그 질곡의 상황 속에서 우리를 구출해줄 것은 바로 <믿음 뿐>이다.
주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 누구도 거들떠보지않는 떠돌이, 업신여김받기에 충분한 처지의 난민과 같은 우리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고 살펴보시고 있다는 그 믿음, 우리가 한번도 요구한 적없는 상상도 못할 선물을 주시려한다는 그 믿음 말이다.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당하게 들리는 그 말씀을 순진하게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가 살면서 오늘 독서의 말씀을 후손 대대로 들려주기 위해 쓴 것이다.(비록 그들이 그 축복을 간수하지 못하고 다시 땅을 뺏겼었지만, 우리는 어쨌든 그런 축복을 한번 받아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잘 관리해야하지 않겠나?)
어떻든 그들은 그 사랑에 감읍하여 자신들도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대대손손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고 함부로 좌절할 것이 아니다. 희망이 없으면 믿으라. 하느님이 끝까지 사막에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 사랑이 눈으로 확인되는 날까지...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화되는 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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