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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 제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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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10 조회수1,297 추천수5 반대(0) 신고

◎ 2003년 8월 10일 (일) - 연중 제19주일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없음)

 

[오늘의 복음]  요한 6,41-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그 때에 41) 유다인들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못마땅해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42)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터인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말이 되는가?"

43)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냐?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45)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46)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이밖에는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다. 47)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50)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인간생명의 부양을 위한 하느님생명의 헌신

 

우리는 지난 몇 주간 주일복음으로 요한복음 6장을 들었다. 물론 6장 전체는 아니지만 연중 17주일(6,1-15), 18주일(6,24-35), 오늘 19주일(6,41-51), 그리고 20주일(6,51-58)과 21주일(6,60-69까지 듣게 될 것이다. 교회가 이렇게 요한복음 6장을 다섯 번 연달아 <나해>의 주일전례복음으로 택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굶주린 군중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빵의 기적은 4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다.(마태 14,13-21; 마르 6,32-44; 루가 9,10-17; 요한 6,1-15) 그런데 공관복음이 빵의 기적을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능을 드러내는 다른 기적사화와 같은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동안, 요한복음은 빵의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생명의 빵>으로 계시하면서 저자 특유의 성체성사신학을 펼쳐간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계시하신다. 이 말씀을 두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웅성거리거나(41절), 서로 따지거나(52절), 수군거린다는(60절) 것은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불신(不信)을 뜻한다. 군중의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유다인들이 웅성거림으로 자신의 불신을 표시한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 드러나는 불신의 대상은 두 가지로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께서 ① "하늘에서 내려왔다"(41절)는 것과, 생명의 빵이신 예수께서 주실 빵이 바로 ② "자기 살"(51절)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다. 걸림돌이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돌로서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마음에 걸리는, 귀에 거슬리는(61절),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더라도 아주 어렵게 이해하는 차원을 말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첫 번째 불신의 대상인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씀을 다루고 있으며(41-47절), 두 번째 불신의 대상인 "자기 살"의 말씀은 오늘 복음의 후반부와 다음 주일 복음에서 다루어 질 것이다. 예수님 주위에는 갈릴래아 호수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호수에서 30-40Km 떨어진 곳의 사람들도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는 나자렛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22-23절 참조) 그러니 예수가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은 이미 군중 사이에 퍼져있는 사실이다. 자기들과 똑같은 인간인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하느님 편에서 볼 때는 진실이요 사실이지만 사람들 편에서 볼 때는 (예수의 부모님만 제외하고) 분명히 걸림돌이다.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 "하늘에서 왔다"면 하느님과 관련하여 예수를 언급하고 사고(思考)해야 한다는 자체가 그들에게 걸림돌인 것이다.

 

요한복음이 전개하는 성체성사신학은 단순히 "생명의 빵"만을 소재로 삼지 않는다. 이 말은 공관복음이 전하는 최후의 만찬에서 비롯된 성체성사를(마태 26,26-28; 마르 14,22-25; 루가 22,19-20; 1고린 11,23-26)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선취하는 사건으로서 성체성사를 성립시킨다면, 최후만찬 식탁의 빵은 예수님 자신으로서 "타인에게 먹혀질 빵"이다. 이 빵을 요한복음 6장에 도입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며, 사람이 되신 말씀이요 성자(聖子)이며, 곧 하느님 자신이다. 이로써 우리는 성체성사를 "생명의 빵"의 차원을 넘어 "인간에게 먹히는 하느님", 나아가 "인간생명의 부양(扶養)을 위한 하느님생명의 헌신(獻身)"의 차원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먹힌다고 하느님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이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신은 빵을 필요로 하겠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마태 4,4) 생명의 빵은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되겠지만 그 양식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47절)는 것이다. 이는 "먹음"과 "믿음"의 일치와 조화이다. 그것은 결국 요한이 자신의 복음서를 집필한 목적에서 밝혔듯이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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