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저 믿으라니 믿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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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8-15 | 조회수2,151 | 추천수20 | 반대(0) 신고 |
8월 15일 금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루가 1장 39-56절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그저 믿으라니 믿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루가 복음사가는 잉태사건 이후 마리아가 처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즈가리야의 집으로 들어갔다."
"걸음을 서둘러"란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마리아의 내적, 심리적인 상태가 얼마나 불안했겠는가에 대해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 마리아가 처했던 현실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한 가냘픈 소녀, 아직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않은 소녀의 배가 점점 불러온다는 것, 참으로 당혹스런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것에 대해 똑 부러지게 변명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동네 공동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들은 모였다 하면 이 미혼모 마리아를 향해 갖은 상상과 험담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당시 마리아의 하루하 루가 얼마나 고통스런 나날이었겠는지 손에 잡힐 듯 합니다.
이렇게 마리아의 생애는 우리가 여러 상본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처음부터 화려한 왕비의 생활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무정하고 황량한 세계의 사막 한 가운데서 기진맥진하기도 했던 한 시골 처녀가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견뎌내기에 너무도 벅찼던 마리아는 사촌 엘리사벳이 사는 아인카림으로 떠나갑니다. 나자렛으로 부터 걸어서 사흘이나 걸리는 먼 여행이었지만, 점점 불러오는 배를 부여잡고,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리아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엘리사벳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천사 가브리엘로부터의 언약의 말씀은 들었지만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듣지 못했던 마리아였기에 늘 긴가민가했었지요. 그런데 엘리사벳의 확증을 통해 마리아는 다시금 힘과 용기를 내게 됩니다.
마리아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됨으로 인해 자신에게 다가올 갖은 고통과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자신의 전 존재를 걸었습니다.
하느님을 선포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으십니다. 우리처럼 손익계산이나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어서라" 하시면 일어섰고, "길을 떠나라" 하시면 길을 떠났습니다. "믿어라"고 하시니 그저 믿었습니다
믿는다는 것 우리가 알다시피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입니까? 마리아는 예수 잉태 사건을 통해 믿는다는 것은 일생일대를 건 하나의 투쟁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길이란 때로 피가 철철 흐르는 가시밭길을 통과해야 하는 아프고 쓰라린 길이라는 것을 인식해 나갑니다.
마리아에게 있어 혈육으로 예수를 낳기는 쉬웠을 것입니다. 산달이 되어 산고의 진통을 겪고 나면 어려움은 끝입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예수를 낳는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마리아가 신앙으로 예수를 낳는데는 베들레헴에서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항상 예수를 품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세월을 통해 마리아의 신앙은 크나큰 비약과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 고통의 세월을 통해 마리아는 어렴풋이 나마 자신을 도구로 이 세상을 구하시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쁘게 자신을 희생시킵니다. 보다 큰 일, 하느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어놓습니다. 여기에 바로 마리아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소박하면서도 충실한 믿음을 배경으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한 끝에 영광스럽게 하느님 나라에 올라가신 마리아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 역시 마리아처럼 하느님에게로 높이 들어올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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