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20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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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8-18 | 조회수1,354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 2003년 8월 19일 (화)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 성 요한 에우데스(1601-1680) 사제 기념
[오늘의 복음] 마태 19,23-30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 때에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24)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나를 따랐으니 새 세상이 와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29)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30) 그러나 첫째였다가 꼴찌가 되고 꼴찌였다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가능성 제로(0)?
오늘 복음은 예수추종의 가르침에 있어서 두 번째 주제인 "부자의 구원불가능성"(23-26절)과 세 번째 주제인 "추종에 대한 보상"(27-30절)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어제 복음에서 어느 부자청년이 자기의 많은 재산 때문에 예수추종을 거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거부(拒否)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인가? 예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하신다.(24절) 그러니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가능성 제로", 즉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정령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놀라 자빠지며,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겠는가?" 하고 묻는다.(25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뚫어지게 보시면서,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가능하다고 하신다. 무슨 말인가? 문제는 간단하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력(自力)은 물론이고 세상의 어떤 것, 그것이 재물이든, 권력이든, 아니면 선행이든 어떤 것을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없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다"(사도 4,12)는 베드로 사도의 외침이 백 번 옳다. 하느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 라는 이름 외에는 어떤 것도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도 부자들을 저주(咀呪)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구원하려 하신다. 단지 부자가 구원받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니,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 6,24) 다시금 세속적 소유에 대한 과감한 포기가 강조되는 부분이다.
이제는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나서서 자기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추종을 감행하였으니 무엇을 보상으로 받을 것인지를 묻는다.(27절) 예수께서는 세상종말, 즉 하느님나라가 서게 될 때 이스라엘 12지파의 심판과 백 배의 상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마르코복음의 같은 대목에는 현세의 보상과 내세의 보상약속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마르 10,30) 학자들은 현세의 보상약속에 대한 마르코의 언급을 경솔한 것으로 본다. 예수께서는 생전에 한 번도 현세의 보상에 대하여 언급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을 버리면 모든 것을 얻게 되기도 하겠다. 집도, 부모자녀도, 땅도 버리고 예수를 따랐으니, 세상의 모든 집과 자녀와 땅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작금의 그리스도교계 신흥종교들에서는 예수추종과 현세의 보상을 한데 묶어 신도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종종 신앙과 재물이 서로 결탁하는 모습을 본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생전에 한 번도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현세의 보상을 약속하신 적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하느님께서 자녀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청하면 현세에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추종의 진정한 의미는 오히려 소유포기와 자기부정, 박해와 십자가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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